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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올림픽, 문명의 위대한 도약

  • 입력 : 2018.02.09 15:56:34   수정 :2018.02.09 1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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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 축제란 무엇인가. 마라톤전투의 승리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한 후 탈진해 죽은 병사를 기념하는 데서 이 축제가 시작됐다고 전한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결국 제우스의 정의가 실현됐다는 기쁨의 선언이자 평화의 선포다. 또 앞날에 대한 불안도, 방패에 실려 돌아온 이들로 인한 슬픔도 없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한 재현이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무척이나 어울린다.
고구려 땅일 때 평창(平昌)은 욱오(郁烏)나 우오(于烏)로 불렸고 통일신라 때에는 백오(白烏)라는 이름이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최전선으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받은 군사요충지다. 고구려가 `태양의 새`인 까마귀의 이름을 붙여 기념하고, 신라는 화평한 세상의 도래를 상징하는 `흰 까마귀`의 이름을 주어 그 뜻을 이었으니 아득한 옛일이지만 까닭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초에 드디어 평창이 되었다. 평(平)에는 천하가 평화롭고 만물이 안녕한 시절이 오기를 원하는 뜻이 있고, 창(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공동체가 융성하기를 바라는 절실한 생각이 담겨 있다. 올림픽 정신과 통한다. 고대 희랍의 올림피아 축제는 아르곤(Argon·경기)들의 축제였다. 달리기, 활쏘기, 던지기 등 육체 능력만 겨룬 것이 아니다. 오늘날과 달리 시가, 비극, 연설 등 모든 분야의 경연이 열렸다. 아르곤은 본래 `경쟁 장소`를 가리켰는데, 나중에는 `경쟁 자체`를 지칭했다. 비극에서는 법정논쟁 장면에 주로 쓰이면서 `변론` 또는 `논쟁`이라는 뜻을 얻었다. `비극의 수사학`이라고 불리는 아르곤은 동등성에 바탕을 둔 채 시민들이 가슴속 진실을 모두 표현하는 실천의 한 형식이었다.

자기보존을 위한 강렬한 투쟁, 즉 이기적인 유전자의 작동은 생명의 근본 활동이다. 생명현상은 잔혹하고 무자비하다. 지느러미를 팔다리로 바꾸어 지상으로 진출하든, 허파를 유지한 채 바다로 되돌아가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자신의 잠재를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도태된다. 자연환경에서 살아남는 자는 반드시 강하다. 약자는 목숨을 잃고 사라질 뿐이다.

아르곤(경기)은 자연의 한계를 넘어 문명의 도약을 가져온 인류사적 사건이다. 희랍인은 자연의 생생한 야만성에 내재한 활력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즉 승자가 명예를 독차지하면서 패자가 목숨을 잃거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정기적 경쟁을 발명했다.
이러면 패자는 승자를 연구해 도전하고, 승자는 도전을 물리치려고 또다시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패자를 죽이거나 모욕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패배가 두렵지 않은 자유경쟁 속에서 희랍인들은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고대 희랍의 모든 위대한 유산은 아르곤으로부터 나왔다. 아르곤의 축제임을 상기하면서 올림픽을 만끽하자.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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