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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공부 그만해라, 아버지 힘들다

  • 입력 : 2018.02.09 15:56:26   수정 :2018.02.09 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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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넘어보니 한 가지 좋은 게 있다. 친구들 만나기가 무지 쉬워졌다는 것이다. 30·40대에는 다들 돈 벌고 애 키우느라 얼굴 보기 힘들었던 동창들이 요즘엔 모임마다 나온다. 심지어 아침에 `번개`를 치면 점심에 스무 명이 나올 정도다.
덕분에 나도 가끔씩 친구들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한다. 얼마 전에는 남자 동창 세 명과 함께 오랜만에 저녁을 먹었다. 처음에는 30년 전 학창 시절을 얘기하며 다들 기분 좋게 술 한잔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져갔다. 55세 한국 남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꽤나 팍팍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 그리고 고위 공무원인 두 명은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 승진하지 못하면 무조건 나와야 된단다. 게다가 대기업 임원은 `기러기 아빠`였다. 아내와 두 아들을 미국에 보내놓고 무려 10년 넘게 돈 버는 기계로 살고 있단다. 그 친구가 그날 술도 제일 많이 마셨다. "내가 살면서 제일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 애들 유학 보낸 거. 애들 처음 미국 보낼 때만 해도 그러면 다 잘될 줄 알았거든. 주변에서도 많이 보냈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후회뿐이야. 애들 뒷바라지하는 게 너무 힘들다."

두 아들은 이미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전 아버지에게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대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단다. 그동안 어마어마한 학비에 생활비까지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던 아버지는 그 얘기에 `충격`을 받았다. 부모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집안 경제 사정이 어떤지 아이들이 전혀 모르거나 안중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급기야 분노한 친구는 자식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먼저 그동안 아들들에게 들어간 돈을 엑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거기에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들어갈 예상 금액까지 적어 보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정도의 돈을 지불할 잔고가 없다"는 말과 함께.

자식들 앞에서 파산선고를 한 친구는 그날 밤 홀로 눈물을 삼켰다. 남들 보기에는 성공한 인생, 능력 있는 임원이었지만 결국 자식들의 꿈을 받쳐주지 못한 무능한 아비일 뿐이었다. 구구절절한 그의 말이 왠지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오십대의 진정한 은퇴는 자식이 돈을 벌어야 가능하다. 내 돈을 안 써야 부모도 은퇴 이후의 삶이 가능하다. 배움의 끝은 반드시 자립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부에만 너무 익숙해진 아이들은 그 연결을 잘 못 시킨다. 배움과 생계가 잘 안 맞는 것 같으면 쉽게 대학원으로 방향을 돌린다. 결국 자식이 연결시키지 못한 생계의 파이프를 붙잡는 건 부모의 몫이다.

예전엔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서 대학원이나 유학을 보내면 취업이나 성공이 어느 정도는 보장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업률이 최고점을 찍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만사형통의 키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요즘 내 또래들의 가장 핫한 자녀 교육 키워드는 `효율성`이다. 누가 가장 돈을 적게 들이고 키웠나. 누구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고 하면 다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물론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런 부모들이 야박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오십대 가장들은 그야말로 삼중고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자식들에게 계속 돈이 들어가는 데다 대부분 팔순인 부모들은 모두 어딘가 아프다. 이제부터는 부모 병원비와 생활비까지 대야 한다. 게다가 부부가 생활하고 먹고사는 것까지 하면 세 집 살림을 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오십대 가장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이토록 버겁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들한테 말한다.
"은퇴하고도 40년은 더 살아야 되니까 이제 그만 가르치자. 대학까지만 졸업시키면 충분하다." 자칫하면 끝까지 가르치려다 끝에 가서 죽는다. 오십대의 자녀 교육은 더 이상 명분과 자랑이 중요한 게 아니다. 현실과 효율을 따지는 셈법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나이다.

[김미경 김미경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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