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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발리 이야기

  • 입력 : 2018.12.06 00:06:01   수정 :2018.12.12 17: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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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 발리는 특유의 계단식 논으로 유명하다. 발리에 계단식 논이 많은 이유는 지형 때문인데, 섬 북동쪽에 해발 3142m 높이의 아궁산이 자리 잡고 있어 섬 대부분이 가파른 비탈이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단식 논에서 벼농사를 짓는다. 발리의 지형과 기후는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지만 발리 농부들은 오랫동안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며 슬기롭게 벼농사를 이어왔다.
발리는 연중 높은 기온 덕분에 논에 물만 있으면 벼가 잘 자란다. 문제는 물이다. 발리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사바나기후에 속한다. 4월부터 9월 사이 건기에는 비가 오지 않아 농사에 필요한 물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기에 농사에 필요한 물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계단식 구조 때문에 논에 물을 끌어올리는 관개시설을 갖추고 있는 상류 농부들은 물 확보 경쟁에 유리하다. 하류에 사는 농부들은 자연적인 물 부족 외에도 상류의 물 사용에 영향을 받는다.

벼농사는 물 확보 여부에 달렸다. 논에 물이 많을수록 벼가 잘 자라고 수확량도 많다. 상류에서 물을 독점하면 상류 농민들이 더 큰 이득을 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정된 자원과 경쟁 속에서 상류와 하류가 어떻게 상호 최대 이익을 이끌어낼까? 발리의 계단식 논을 연구하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상류 농부들과 하류에 사는 농부들은 물 부족 문제에 서로 종속되어 있다.

처음에 논의 수가 많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땐 상류와 하류가 서로 영향이 없어 상류에서 벼농사가 끝나면 하류에서 물을 끌어다 번갈아 농사를 지으면 된다. 하지만 차츰 섬 인구가 늘면서 논이 많아지고 좁은 면적에 논이 밀집되면서 상류와 하류가 강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농사에는 예기치 않은 난관이 많다. 물 확보가 벼농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여기에 해충의 피해가 맞물려 있다. 벼가 자라면서 해충도 번성한다. 벼를 추수하면 먹을 것이 없어져 해충은 이웃 논으로 이동한다. 상류에서 벼 수확량이 늘면 해충도 늘어나고 다음에 이어진 하류의 농사를 망친다. 악순환은 다음 번 상류로 이어진다. 어느 한쪽 농사가 잘 될수록 해충의 피해도 크다.

해충의 피해를 줄이려면 상류와 하류가 같은 시기에 벼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류와 하류가 경쟁보다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실제로 물 분배와 벼농사 시기에 대해 상호 조정이 필요하다. 발리에는 농부들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물 사원`이 있다. 물 사원은 물 분배와 농사 시기 등 상류와 하류의 농사를 조정한다. 국가로 치면 정부의 역할이다. 해충으로 인한 피해가 클수록 결과적으로 상류와 하류 사이에 협력이 강화되어 전체 벼 수확량이 늘어난다.

발리 이야기는 사회경제학자 존 밀러 교수의 저서 `전체를 보는 방법`에 나온 실제 사례다. 핵심 교훈은 "서로 경쟁하면 형편이 조금 나아지지만 서로 협력하면 훨씬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제한된 자원과 한계 상황 내에서 상호 최대 이익을 얻으려면 경쟁이 아닌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사회도 발리와 다를 바 없다. 자원이 한정된 좁은 땅에 수많은 인구가 살고 있어, 누구라도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주택, 뭐 하나 경쟁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상위 1%만의 행복을 위한 사회인가 싶을 만큼 매순간 경쟁이 치열하다. 부의 편중과 수도권 집중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정부의 조정 능력은 약화되고 있으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투쟁이 온통 사회 뉴스를 뒤덮고 있다. 사회 전체가 행복한 길은 과연 없을까.

상류에 있든 하류에 있든 우리는 모두 동등한 인간이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사회 전체가 파멸로 갈 수밖에 없다. 자연은 경쟁보다 협력이 더 유익하다 가르친다. 무한 경쟁을 해소할 유일한 해법은 협력이다. 행복한 사회의 존속을 위해 겸허히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협력 사회`로 진화해야 한다.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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