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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우생마사(牛生馬死)

  • 박정철 
  • 입력 : 2018.12.04 00:07:01   수정 :2018.12.04 1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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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나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 만난 수도권의 A판사는 요즘 자신의 처지를 고사성어 `우생마사(牛生馬死)`로 표현했다. 말은 동물 중에서도 수영이 수준급이다. 하지만 홍수가 나서 소와 말이 함께 물에 빠졌을 때 소는 물살에 몸을 맡기면서 떠내려가다 살아남는 반면, 말은 제 빠름과 힘만 믿고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 죽는다고 한다.
즉 `순리대로 살라`는 것이 우생마사의 취지다. 그런데 판사들 사이에선 사법농단 사태를 빗대 "너무 나서지 말고 처신에 조심하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다. A판사는 "일부 판사들이 완장찬 것처럼 행세하는 마당에 괜히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는 적폐로 몰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당분간 몸을 사리고 조용히 지내려는 판사들이 많다"고 귀띔한다. A판사의 우려대로 사법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태를 둘러싸고 사분오열 직전이다. 특히 진보성향인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요직에 중용돼 목소리가 커지면서 내부 갈등과 반목이 극에 달한 듯한 분위기다. 지난달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부 스스로 자정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동료 판사들의 탄핵 촉구 소추안 의결을 이끈 것도 진보성향 판사들이었다는 전언이다. 이들 특정 단체 출신 판사들이 탄핵을 통해 판사 축출을 주도한 게 사실이라면, 양승태 대법원 시절 정권에 밉보인 판사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뒤를 캔 것과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정권만 바뀌었을 뿐, 자신들의 이념과 철학에 맞지 않는 세력을 물갈이하고 손보려는 구태는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 석연찮은 대목은 `김명수 사법부`마저 `양승태 사법부`처럼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농단과 재판 거래 의혹의 철저한 규명을 주문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즉석에서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로 화답하면서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 단적인 예다. 특별재판부 설치도 법원행정처의 위헌 주장을 무시하고 박주민 의원을 비롯해 집권 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여기에다 진보진영 판사들은 범죄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동료 판사들의 탄핵안을 발의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까지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절대 중립을 지켜야 할 사법부의 독립과 법치주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지만, 사법부 주류 세력 중 어느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 시중에선 "청와대와 여당, 사법부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는 얘기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양승태 대법원처럼 사법부가 한번 중심을 잃고 권력 눈치를 보게 되면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더구나 법과 원칙보다 여론을 앞세운 `다수의 폭정`에 무릎을 꿇으면 사법부 독립은 요원해진다. 이 때문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민주사회에서는 정권이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구실하에 반대 의견을 억누르려고 권력을 사용한다"며 "다수의 폭정은 육체는 자유롭게 놓아두되, 영혼은 여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당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여론의 사형 판결 요구를 거부한 고지마 고레카타 대심원장(최고재판소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이 `법치`를 내세워 러시아 황태자를 부상 입힌 경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고지마 원장처럼 되지는 못할망정, 검찰 수사와 국회 탄핵 등 외부의 힘을 빌려 적폐 청산과 사법부 독립을 추진해서야 되겠는가. 이제라도 자신의 직을 걸고 법원 스스로 개혁과 변화에 앞장서려는 단호한 의지와 결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법원을 찾는 국민이 바라는 것은 판사가 자신의 사건에 귀 기울여주고 충실하게 심리하면서 공명정대한 판단을 내려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개혁의 초점은 인민재판식 인적 청산보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현행 상고심제도를 비롯해 전관예우 관행, 판사들의 고압적인 태도, 정실과 연고 위주 인사 등 사법행정과 재판제도 개선에 맞춰져야 한다. 지금처럼 판사들이 적폐 낙인을 피하느라 납작 엎드린 `우생마사` 자세로는 법원 개혁과 변화는 어림도 없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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