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오피니언

[사람과 법 이야기] 사법부 신뢰의 위기

  • 입력 : 2018.12.01 00: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75126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2018년은 여태 품어왔던 생각의 수준을 넘는 일을 보고 듣는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과거 고위직 법관들이 종전에 한 일로 문제 되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라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각종 의혹에 관여됐다고 하는 수십 명에 달하는 판사들이 수사기관 조사를 받는 초유의 일을 목도하고 있다. 이제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대법원장 차량에 화염병 공격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사법부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낸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 때문에 법원은 현재 극심한 신뢰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엊그제 지인 한 분이 법원을 걱정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1심 재판에서 억울하게 실형을 받았다가 간신히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경험을 한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기에도 벅찬 그분으로부터도 법원이 걱정을 사는 것을 보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판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정말 울화가 치밀어 오른단다. 법정 구속을 당하는 자리에서 `판사님, 제가 써낸 글, 다 읽어보셨나요?`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가 항소심 재판을 통해 구제됐기는 하지만, 믿었던 법원과 판사에 대한 배신감은 그다지 풀린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신뢰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다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깨진 믿음은 그것을 다시 쌓아올리는 데 오랜 노고가 따를 것이다. 그래서 법원이 처한 작금의 위기 상황은 이를 극복하기에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인의 메일을 읽으면서 위안이 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불신은 종종 혐오, 미움으로 발전할 터. 하지만 극도의 불신은 무관심으로 낙착되는 법인데, 이 메일은 결을 달리했다.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는 지인의 글 속에서는 그래도 법원이 좋은 재판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했다. 좋은 재판은 진심 어린 정성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법부의 신뢰 위기는 판사들이 과중한 업무량에서 좀 풀려나 "잘 읽고 들어줄 때" 해결될 것이라는 처방 앞에서 가슴이 먹먹했다.

751264 기사의 1번째 이미지
필자도 판사 시절 종종 `정말 그 많은 기록을 다 읽고 재판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변호사가 된 지금은 같은 의문을 재판부에 대해 갖게 되기는 한다. 법정 앞에 붙어 있는 재판진행표에 빼곡하게 10분 단위로 서너 건씩 책정돼 있는 재판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오곤 한다. 이 표를 보면서 걱정스레 수군대는 사건관계인들 목소리를 판사님은 알기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법정에서 기록을 읽지 않은 티를 그냥 내는 재판장의 재판 진행을 겪고 나면 정말 맥이 빠지기 일쑤다.

법정마다 재판장 얼굴이 제각각 다르듯, 법정의 재판 진행 역시 꽤나 다르다. 같은 여건과 상황 속에서도 여유와 친절을 보이면서 섬세한 재판을 하는 판사도 많다. 이런 재판장을 만날 때면 설령 불리한 판결을 받더라도 그대로 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신뢰와 실망은 정말 간단한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재판 잘하는 판사들의 재판 모습이 널리 전파될 필요가 있겠다.

사회적 동물인 호모사피엔스는 인간 상호 간 신뢰 속에서 생존한다. 그 때문에 신뢰는 상호 교환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장막을 쳐 놓고 일방통행만 강요당해서는 얻어지기 어렵다.
경청, 소통과 대화 속에서 이 신뢰는 싹틀 수 있다. 기실 재판이라고 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신뢰를 얻을 수도 있고 또는 신뢰를 거둘 수도 있다.

이 겨울, 진화심리학에 관한 어느 책을 읽다 보니 "신뢰는 호혜주의가 아니라 옥시토신이라는 화학물질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구절이 나와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이지 법원이 처한 위기를 잘 극복해내기 위해 옥시토신이라도 법정에 뿌려야 하는가. 마음이 아파 온다.

[김상준 변호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