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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장경덕 칼럼] 시간 앞에 겸손할 것

  • 장경덕 
  • 입력 : 2018.11.28 00:07:01   수정 :2018.11.28 10: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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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또 한 장밖에 안 남았다. 시간은 어김없다. 그래서 야속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집권 5년 중 3분의 1이 지났을 뿐인데. 대통령은 시간이 쏜살같다고 느꼈을까.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국정과제를 설계했다면 이제부터는 성과를 만들어나가는…"이라고 했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금은 국민 앞에 성과를 보여야 할 시점"이라고 했고, 조국 민정수석은 "성장 동력 강화와 양극화 해결에 부족함이 많기에 비판을 받고 있다…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문재인정부는 성찰의 시간을 맞은 걸까.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간에 다시 가다듬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없으면 5년은 길게 느껴집니다."(나중에 이 당선인은 "5년은 짧다"고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은 "우리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변화와 개혁에 실패했다"며 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고 했다. 요즘 여권의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은 어디에서 나온 배짱일까. 아니면 허세일까.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가장 많이 팔렸지만 가장 안 읽히는 책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들춰볼 필요도 없다. 우리의 시간은 얼마든지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다. 대통령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시간은 왜 부족한 걸까. 시계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시간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정해진 시간에 힘에 부칠 만큼 많은 일을 하려고 계획한 이는 늘 시간 부족에 허덕인다. 실천하는 데 너무 굼뜬 이도, 여럿이 함께할 일을 혼자 해치우려고 애쓰는 이도 그렇다.

문재인정부는 시간을 잘 쓰고 있는 걸까. 벌써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면 스스로도 지난 시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말일까.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타임머신을 타고 1년 반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래도 그동안 해왔던 그대로 똑같이 되풀이할 것인가.

국가 경영을 맡은 이들은 시간의 문제를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녹아들어 있는 온갖 시간을 꿰뚫어봐야 한다. 우리는 시장에서 노동의 시간이 응결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판다. 화폐와 금융은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수단이다.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하는 이들이나 현재의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는 이들 모두 시간을 거래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 모든 시간관계를 너무 쉽게 흐트러뜨렸다. 정부의 시간표와 시장의 시간표는 완전히 어긋났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는 시간을 무리하게 단축하려는 시도였다. 값싸게라도 노동을 팔아야 하는 이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 시간 제약이 없는 로봇이 그들을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불평등을 줄이는 데 마음이 급한 정부는 재분배를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생산 단계에 직접 개입하고 가격을 함부로 통제했다. 무리하게 임금을 올렸다 비용상승형 인플레이션이나 원화 약세로 결국 도루묵이 될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건 다음 정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무책임하다. 반대로 정부가 시장보다 느리게 움직여서 생기는 시간의 불일치도 심각하다. 지금처럼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는 시대에는 규제와 교육 개혁도 그만큼 빨라져야 한다. 노동시장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정부는 두 가지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좀 더 빨리 뛰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멀리 가려면 빨리 뛰는 수밖에 없다. 물론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경우에만 그렇다.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혁신 국가로 가는 건 빠를수록 좋다. 낙오하는 이들은 따뜻하게 보듬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 진영도 책임감을 갖고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둘째는 함께 뛰는 것이다.
발목을 잡는 반대세력을 설득해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전진은 불가능하거나 너무 더딜 것이다.

시간은 현명하게 시간을 활용하는 이들의 편이다. 현 정부가 임기 말에 깊은 회한에 잠길지 그런대로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면서 위정자들은 잠시 멈추고 생각해볼 일이다. 시간 앞에서 진실할 것, 그리고 겸손할 것.

[장경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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