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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청와대의 확증편향이 우려된다

  • 정혁훈 
  • 입력 : 2018.11.27 00:07:01   수정 :2018.11.27 17: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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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발사 73초 만에 공중 폭발하는 장면이 생중계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업체는 고체연료 추진장치에 붙어 있는 고무패킹이 수축하면서 생긴 틈으로 연료가 새어 나와 기체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고 나사(NASA)에 경고했었다. 그러나 나사는 그동안 문제가 없었다는 경험과 발사 연기 시 의회의 예산 삭감 가능성을 의식해 발사를 강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41년 12월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습. 당시 허즈번드 키멀 미군 제독은 공습에 대비할 기회를 판단 착오로 날리고 말았다. 그는 일본의 전쟁 개시 가능성에 대한 워싱턴의 경고를 무시한 데 이어 공습 하루 전에는 "일본 항공모함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보고까지 묵살했다.
진주만의 안전 신화에 어긋나는 정보는 곧이듣지 않았다는 사실이 뒷날 확인됐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 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하는 심리다. 이런 경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증시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주가가 한창 오르는 상승장일 때 시황 전문가들에게 전망을 물으면 십중팔구는 "주가 상승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주가가 오를 이유만을 줄줄이 나열한다. 주가 하락의 요인은 철저히 배제된다. 하락장일 때는 완전히 그 반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아니면 적어도 당장의 현상을 뒤엎을 만한 발언을 하기엔 용기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망가진 기업도 적지 않다. 이젠 그 존재마저 희미해진 코닥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막 등장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 코닥 내부에서 작성한 시장보고서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인화물을 직접 다루고, 현상하려는 소비자 욕구는 전자 이미징 기기로 채울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디카`가 가진 숱한 장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을 감았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결론이다. 아마도 CEO와 다른 생각을 입 밖에 내기 어려웠던 현실이 보고서에 투영됐을 것이다.

국가 정책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의 확증편향이 걱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 생산이 감소하다 8월부터 10월까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조선도 10월까지 수주 실적이 71% 늘어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기회를 잘 살리자고 했다. 좋게 보면 격려의 말일 수 있지만, 일시적일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느낌이다. 수주는 늘었지만 건조 자금이 부족해 혈세 지원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조선업을 두고 세계 1위를 언급한 것은 성급하다. 대통령 참모들은 많은 팩트 중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것만 끄집어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한술 더 떠 22일 세미나에서 "경제성장률이 3.1%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단락적인 위기론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개혁의 싹을 미리 잘라내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기업 살리기를 요구하는 게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보좌관도 아닌 경제보좌관이 올해 성장률이 작년보다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는데도 여전히 작년 성장률에 매여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위기에 대한 많은 이들의 충정 어린 지적을 불순한 의도로 폄훼하는 선입견도 안쓰럽다.


어떤 조직이든 권력을 쥔 사람 곁에서 그와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패권자가 듣기 좋은 말을 하는 편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보다 자신의 안위에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구루`로 통하는 전설적 투자전문가 피터 번스타인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내 의견에 동조하는 글을 읽는 것은 쉽지만 그건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신념에 얽매이기보다 좀 더 솔직하고 현명해져야 할 때다.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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