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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동아시아 공동체 가로막는 민족주의

  • 입력 : 2018.11.27 00:06:01   수정 :2018.11.27 17: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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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언론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이야기가 다시 들리고 있다. 특히 `남북 관계 대전환`을 믿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가 동아시아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주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동아시아 상황을 보면 이것이 이뤄질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수백 년 동안 대립과 전쟁의 온상이었던 유럽에서 EU, 즉 유럽연합이 생겼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 배경은 동아시아와 사뭇 다르다. EU를 가능하게 만든 조건 중 하나는 민족주의가 사실상 죽어버린 것이다. 양차 대전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전후 서유럽의 엘리트 계층은 150여 년 동안 국교처럼 믿었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버렸다. 그들은 끔찍한 대전과 학살을 초래한 것이 독일 민족주의 혹은 어떤 나라의 민족주의보다는 민족주의 원칙 자체라고 판단했다. 결국 민족주의 세계관을 여전히 지지한 세력들은 매우 주변화됐다.

동아시아는 다르다. 한국·중국·베트남에서 많은 국사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들은 유럽에서 `극우`로 간주된다. 어떤 동아시아 교수들처럼 자국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이웃 나라를 공격하는 이야기를 하는 서유럽 교수의 연구실은 다음 학기부터 다른 교수가 쓰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자랑스러운 `민족 역사관`으로 믿는 내용들은 EU 선진국 대부분에서 `악명 높은 국수주의 선전`으로 여겨진다. 동아시아 사람들도 악독한 민족주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추상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일본 민족주의다. 1937~1945년 학살과 만행의 책임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민족주의자들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약화할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도 별로 믿지 않는 `공식 마르크시즘` 사상을 암묵적으로 포기했고, 그 대신 사상 동원의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사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민족주의가 약화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동아시아 공동체의 길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이 걸림돌은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극복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구조는 너무 불균형적이다.

EU 주요 국가들은 인구·경제력 격차가 별로 없다. 예를 들면 EU에서 제일 큰 나라인 독일은 전체 EU 인구의 16.1%를 차지하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 인구도 각각 13.1%와 11.8%를 차지한다. 총생산액을 보면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전체의 21.4%이며 프랑스는 15.0%, 이탈리아는 11.3%다. 차이는 있지만 엄청난 차이가 절대 아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중국·남북한·대만·일본과 베트남을 동아시아 국가로 본다면, 이 지역의 전체 인구는 17억2000만명이다. 그런데 중국 인구는 82.4%를 차지하며, 남북한의 비율은 4.3%에 불과하다. 경제를 보면 불균형이 이만큼 극심하지 않지만 유럽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전체 총생산액은 18조9000만달러인데, 중국의 비율은 64.7%이며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유럽의 인구와 경제구조 자체는 EU 가입국들의 협력과 타협을 불가피하게 하지만, 가설적인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중국은 처음부터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합은 `동아시아 공동체` 대신에 `중국과 그 주변의 공동체`로 부르면 훨씬 더 정확해 보인다. 중국이 민주화되고 민족주의가 거의 없어질 경우에도 이러한 `공동체`는 매우 불평등한 성격일 것이다.
물론 현 단계에서 중국은 탈민족주의나 민주화를 추진할 조짐이 아예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보다 더 심각하다.

그래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민족주의가 오늘날만큼 심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이러한 패권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별히 전통적으로 반중(反中) 감정이 심한 일본·대만, 그리고 베트남은 더욱 그렇다. 동아시아 국가 간 경제 협력을 강화할 필요도 있고 지역에서 긴장을 완화할 필요도 있지만, 뿌리 깊은 민족주의와 매우 심한 구조적 불균형 때문에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환상에 불과하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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