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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데스크] 시험대 오른 자치경찰제

  • 황인혁 
  • 입력 : 2018.11.26 00:07:01   수정 :2018.11.26 17: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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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시대부터 공공질서를 유지할 책임은 시장이나 지사에게 있었다. 유급 경찰을 두고 거리 순찰을 맡겼다. 앵글로색슨 시대부터 자치경찰의 틀을 접목한 영국에선 12세 이상 남성들을 10인조로 묶어 각 마을의 안전을 맡게 했다. 미국도 각 주와 도시마다 별도의 경찰 조직을 운영하며 연방수사국(FBI)만 미국 전역의 수사권을 행사한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상당수 선진국들이 자치경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지역 밀착형 치안 행정을 펼치자는 취지에서 자치경찰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73년 역사의 한국 경찰이 일대 변화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서울 세종 제주 등 5개 지역에서 내년 중 자치경찰제를 시범 실시한 후 2022년 전면 시행한다는 방침을 최근 내놨다. 국가경찰 12만명 중 지구대·파출소 인력 중심으로 4만3000명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고 이들 자치경찰에게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지역 경비 등 주민 밀착형 치안 업무를 맡긴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미군정시대에 탄생한 지금의 한국 경찰 체제가 이원화될 경우 민생 치안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필자도 자치경찰의 취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자치경찰이 맡게 될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사건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추락사나 서울 강서구 주차장 살인 등의 끔찍한 사건은 모두 주민 생활 공간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가출(실종) 신고를 한번 살펴보자. 만 18세 미만이나 치매환자만 따져도 지난해 3만8800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100건이 넘는다. 이런 가출신고가 접수되면 가까운 지구대나 파출소 인력이 현장 탐색을 시작한다. 범죄 의심점이 포착되면 강력범죄 수사 체제로 전환되고 경찰 상황실이 가동된다. 주변 지역의 차량 검문과 강력팀 투입, 경찰서장 중심의 실종수사 조정위원회 개최 등 일사불란한 대응이 수반돼야 한다. 사건을 신속히 진압하려면 치안책임자가 총괄하는 총력 대응 시스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올해 7월 경남 밀양에서 아홉 살 여아가 트럭으로 납치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경남지방경찰청장 지휘하에 경찰관 167명이 투입돼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

만약 자치경찰로 가출 사건이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해당 지역 자치경찰이 수색에 나서다 하루이틀이 지나도 실종자 소재 파악에 실패하면 국가경찰이 투입된다. 이 경우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는 논란 속에 국가경찰과 지방경찰 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 실종수사도 초기 골든타임 확보가 매우 중요한데 수사 지휘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지체가 벌어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자치경찰이 확보한 초기 수사 정보가 국가경찰에게 원활하게 이양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그사이 실종자 가족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가정은 비관적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을 털어내기 어렵다. 다년간의 수사 경력을 지닌 한 경찰은 "범죄가 갈수록 광역화·지능화되는 추세여서 긴밀한 수사 연계 체계가 중요하다"며 "여성·청소년 사건을 결코 가볍게 봐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경찰 안팎에선 자치경찰제 도입이 `검경수사권 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한테 수사권을 나눠 받게 될 경찰의 힘을 빼기 위해 경찰의 인원과 조직을 잘라내려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최근 박상기 법무장관은 "수사 대상 범위가 예상보다 너무 좁게 자치경찰에 이양되는 게 아닌가. 권한이 (자치경찰에) 대폭 이양돼야 한다"면서 경찰 견제론을 뒷받침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구대와 파출소뿐 아니라 지방경찰청과 지방 소재 경찰서도 지자체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검경수사권 조정의 정치공학적 흐름 속에서 자치경찰제가 현실화하고 충분히 검증이 안된 경찰 조직 이원화 여파로 여성과 청소년 등 국민 안전에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치경찰이 출범하기도 전에 불신부터 하자는 건 아니지만 `국민 안전`은 결코 연습의 대상이 아니다. 정쟁의 희생양이 되어서도 안된다.

[황인혁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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