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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zoom in] 한국에서 유니버설뱅킹은 가능한가

  • 입력 : 2018.01.31 17:21:35   수정 :2018.02.01 09: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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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새로운 금융투자협회장이 선출되었다. 박빙이 될지 모른다는 막판의 예상을 뒤엎고 키움증권 사장을 지낸 권용원 후보가 7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공직자 출신이기도 한 권 신임 회장은 선거 기간에 200여 회원사를 만나 들은 이야기들을 빼곡히 적어놓은 두툼한 두 권의 수첩을 내보이며,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규제 완화를 위해 힘쓰겠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두 경쟁 후보 역시 정견 발표에서 한결같이 규제 완화와 금융투자업의 권역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임하는 황영기 회장은 "막대한 자본과 인원을 가진 은행권이 금융투자업 영역으로의 진입을 끊임없이 시도하는데, 차기 협회장은 격렬히 저항해야 한다"고 힘줘 주문했다. 두 가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는 자본시장 참가자들이 `제발 좀 어떻게 해주세요` 하는 규제가 두꺼운 수첩 두 권 을 꽉 채울 만큼 많다는 것, 그리고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 간 권역 다툼이 첨예한 상태라는 것이다. 은행권은 신탁업과 금융투자업무도 확장을 꾀하고 있고 금투업계는 결제업무, 예대업무, 외환업무 등을 취급하고 싶어한다. 양 업권이 각각 처한 상황이 있고, 나름의 정당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도 있을 것이다.

금융 분야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어떤 쪽으로 가야 할지 물어올 경우 어느 쪽이 수입이 더 좋은가, 또 전망이 좋은가라고 묻기 전에 본인의 성향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나는 농부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사냥꾼 같은 사람인가? 즉 안정된 일을 하고 좀 더 확실한 수확을 만드는 일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높은 수익을 꾀하는 일 중 무엇이 더 맞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이다. 은행과 금융투자업의 차이다.

우리나라 은행은 기획경제 시절 기업들의 유일한 자금 공급자 역할을 했다. 은행은 지금도 금융기관이라고 불린다. 정부도 수시로 공공성을 강조한다. 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막아내야 하고, 정부 시책에 따라 기술금융도 해야 하며, 혁신창업 지원도 소상공인 대출 지원도 해야 한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이 실적과 경영능력만으로 자율적 의사 결정에 의해 그 자리에 간다고 시장은 선뜻 믿지 않는다. 이런 자리에 오른 인사들 역시 실적을 내고 고액 연봉이나 상여를 요구했다거나,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보상이나 임기가 어떻게 되느냐를 따지고 네고했다는 이야기 또한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직 우리나라 은행은 `금융기관`이지 `금융회사`의 모습은 아니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행장이 취임 첫날 노조의 반대 시위 없이 자신의 사무실에 무사히 출근한 예를 찾기 어렵다. 시장 상황에 따라 뉴욕 런던 홍콩 등 소위 국제금융센터에서 수도 없이 구조조정을 해왔던 씨티은행이지만 한국에서는 지점의 80%를 축소하면서도 고용 감축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 노조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어떻게 봐도 우리나라 은행은 시장 변화에 따라 유연한 의사 결정이 어려운 구조다.

자본시장은 변동성이 극심하다. 1월까지 좋았던 비즈니스가 2월 엔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증권회사들이 한때 몇 조원씩도 팔던 ARS(원금보장투자스왑)가 한순간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부분의 지점을 폐쇄해버린 메리츠증권과 위탁 수수료 파괴를 이끈 키움증권이 유연성과 전문성을 내세워 불과 수년 사이에 전통적 대형 증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까지 올라왔다.
대형 종합자산운영사의 영역을 2년 만에 140개가 넘게 생긴 신생 전문사모운용사들이 빠르게 잠식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다수가 얼마 못 가 적자로 문닫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자본시장에서 현재 모습의 은행들이 얼마나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까?

선진 국제금융 시장에서도 은행이 증권이나 자산운용업을 성공시킨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자생적으로 진화해 나가야 할 역동적인 자본시장에 `금융기관`들이 자금력과 거대 조직에 기대어 들어와 경쟁을 왜곡시키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재우 보고펀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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