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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그들은 평화죠

  • 입력 : 2018.11.10 00:07:01   수정 :2018.11.10 2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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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고전 예술이 물고기에게 물처럼 익숙하지만 케이팝을 알 리 없는 나이든 독일 지식인들에게 나는 요즘 열심히 BTS 이야기를 한다. 특히 그들이 미국, 유럽 투어를 하던 동안에는 때로는 영상까지 보여주며 팬 노릇을 했다. 책이나 들여다볼 줄 알지 텔레비전도 없이 살아 온 사람이 느닷없이 아이돌 그룹의 팬이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젊은이들은 그저 고운 게 아니라 참 반듯하다.
본업에 충실하다. 최선을 다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는 미안함에 울음이 터질 만큼, 또 감사로도 눈시울을 적실 만큼 열심히 살아왔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는 게 눈에 보인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뭐든 다 되기야 하겠는가. 그들은 본업에서 유능하다. 문외한인 내가 음악과 춤을 논하진 못하지만, 그 세련된 어법에서만도 견실한 프로의 역량이 엿보인다. 베를린에 와서는 그랬다. "우린 분단을 공유하죠. 비전도 공유해요. We share division. We share the vision./위 셰어 디비전. 위 셰어 더 비전." 래퍼의 기량이 두드러져 보이는 어휘구사이기도 하지만 분단(디비전)과 비전(더 비전)을 각운 맞추어 `나눔`으로 한데 묶을 줄 아는 젊은이의 역사의식과 반듯함이 빛을 발하는 한순간이었다. 절실한 것에 힘을 쏟아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혼신의 힘으로 무대에 올려 남들에게는 기쁨을, 스스로에게는 문제를 극복하는 힘을 주고 그 성과까지 맛보는 경험 자체가 그 무엇보다 이들을 키우지 않았을까 한다. 그저 인형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갈 힘을 키웠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잘 키워지고, 자신을 잘 키운 것 같다. 소소한 것들에서도 이 그룹을 탄탄하게 만든 저력이 짐작된다. 예컨대 분쟁의 해결 방식도 놀랍다. 사람 모인 곳에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싸울 일이 있으면 실컷 싸우게 하고 다만 그 해결만은-다툼이야 어떤 것이든 둘 사이에서 소소한, 때로는 창피한 일로 벌어질 텐데-모두 함께 얘기하며 해나간다고 한다. 다정한 모습이 한낱 포즈로야 오래 지어지겠는가. 본(本)이 놀랍고 지엽도 놀랍다.

이런 젊은이들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세계 젊은이들의 대형 스타디움을 뒤흔드는 함성이며, 몇 날 며칠 공연장 앞에 쳐진 텐트 열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이 든다. 그들 역시 놀랍다. 자신이 아끼는 것을 지켜주고 키우고, 그러면서 함께 커 가는 젊은이들이 주축인 줄 알기에 더욱 그렇다. 갖가지 젊은이다운 방법으로 표현하는 공감도 곱다. `퍼플 라인`을 만들고, 유니세프에 동참하고…. 다들 예쁘다. 그들이 이루어내는 선(善)순환 구조가 고맙다. 바라보노라면 세대 전체에 대한 신뢰감이 든다. 드물게 느껴보는 귀한 감정이다.

무슨 높은 것으로 저 많은 젊은이들을 저렇게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그 믿기지 않는 일을 아직 20대 초반인 젊은이들이 그들의 삶으로써 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기성세대로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엇갈리기도 한다. 마지막 수업을 하며 나는 앞으로 가질 직업을 박수부대라고까지 했건만, 오랜 삶의 경험으로도, 아직 실적이 미미하다. 세계무대를 단기간에 석권한 그 기분이 어떠냐고 어느 미국 사회자가 물었을 때-나는 어지럽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그들의 대답은, 아주 경쾌하고도 현명했다. 떨어질 줄 안다고, 그렇기에 지금을 롤러코스터를 타듯 즐기고 있다고. 이 경쾌하고 반듯한 소년들을 두고 한 BBC 앵커가 요약했다. "그들은 평화죠. They are peace."

이 `평화`가 물론 영원할 수는 없다.
행여 초심을 잃는다면 더 빨리 끝날 것이다. 아이돌의 그리스어 어원 자체가 상(像), 또한 허상이다. 그러나 그저 이미지인들, 설령 허상이든, 어떤가. 그 주변에는 산업도 뒤따르는 줄 알지만, 이만큼의 순수한 기쁨을 누가 이 험한 세상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주겠는가. 데이 아 피스. 그 짧은 문장이 계속 귓전에 남아 울리는 건, 사방을 울리는 건 온통 함부로 던지는 험한 말이요, 보이는 건 싸움밖에 모르는 듯한 어른들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조금만 더 서로를 아끼며 박수쳐 주며 살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나는 누구의 아미가 될까.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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