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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통신] 독일의 현자,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

  • 입력 : 2018.11.06 00:07:01   수정 :2018.11.14 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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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에게 묻습니다. "총리께선 우리가 폴란드에 대해 너무 무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폴란드 정부가 독일에 대해 너무 거칠게 대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그 말씀은 아직도 유효합니까?" 대통령과 총리를 맡고 있는 카친스키 형제가 이끄는 폴란드 정부의 대독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슈미트 총리는 먼저 폴란드 근세사를 언급합니다.
"과거 200여 년간 폴란드와 독일은 불행한 관계였습니다.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러시아 세 강국에 의해 분할되기도 했고 또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폴란드는 이처럼 주변 국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웃으로 불행한 역사를 가졌기에 프랑스와 함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웃입니다." 기자는 다시 불만 섞인 목소리로 "독일은 그런 부채의식 속에서 도리와 노력을 할 만큼 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슈미트 총리는 "지난 35년간 나름대로 노력했지요. 빌리 브란트 총리의 무릎 꿇기, 양국 간 바르샤바조약과 폴란드의 EU 가입을 위한 헬무트 콜 총리의 노력 등. 그러나 근자 35년간 우리의 노력이 그전 200년을 보상할 수는 없습니다. 또 폴란드 국민이 지나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독일 국민이 알게 모르게 폴란드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카친스키 형제의 독일에 대한 태도가 옳든 그르든 간에 우리는 감내하며 더욱 배려해야 합니다"라며 기자를 깨우쳐 줍니다.

기자가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폴란드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독일 사람들에게 무엇을 권고하겠는지 묻자 슈미트 총리는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답변합니다. "성인이라면 폴란드의 그단스크, 크라쿠프, 말보르크 등 도시를 방문해 그들이 옛 건물들을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재건해 놓았는지 볼 것을, 젊은 학생이라면 폴란드에서 두 학기를 공부할 것을 권하고 싶다."

한 국가의 지도자, 나아가 국가의 품격이 느껴지는 따뜻한 답변입니다. 슈미트 총리의 이런 생각과 판단이 독일 사람들이 그를 독일의 현자 또는 지성으로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1982년 퇴임한 후 2015년 작고할 때까지 `디 자이트`지의 공동 발행인으로 일하면서 독일과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판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사 문제 등을 둘러싸고 끈질기게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측에 대해 일본 측은 대체로 나름대로 성의 있는 반성과 조치를 했다는 전제 위에 언제까지 반성과 사죄를 요구할 것이며 심지어 양국 간 합의조차 깨려고 하는지 하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독일과는 좀 다른 행태입니다.

독일과 일본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본은 전범국이면서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참혹한 원폭 피해를 입었기에 마치 피해국인 것 같기도 합니다. 독일은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인접국과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으나 그에 비하면 일본은 섬나라로 그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나아가 독일은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는 국가이지만 일본은 천황제와 신도이즘 영향이 큰 나라로서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일본에도 한국 입장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 이사장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입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무릎 꿇고 사죄하며 원폭 피해자를 찾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도쿄 도의회는 혐한 시위를 포함해 헤이트 스피치 관련 집회로 판단되는 경우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일본의 품격을 높이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한편 국가의 품격은 가해국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피해국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국제 법규나 합리성을 배제한 감정적 대응이 오히려 국가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익을 침해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합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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