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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사법불신 원인된 '판단자 변수'

  • 입력 : 2018.11.03 00:07:01   수정 :2018.11.03 22: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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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16강전에서 이탈리아 축구 전설 프란체스코 토티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페널티킥을 얻으려는 눈속임을 벌이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다. 옐로 카드에 연이어 레드 카드를 높이 빼든 바이런 모레노 주심의 단호한 모습. 우리 팀은 그 이후 안정환의 역전 골로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지금도 이 경기를 감동스럽게 기억한다. 아울러 이 경기에서 팔꿈치로 우리 선수들의 얼굴을 가격하는 등 수시로 거친 플레이를 벌인 상대팀 선수들 행태에 대한 빈축 어린 분노도 생생히 되살아난다.
한편 퇴장당한 토티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국민은 모레노 주심이 부정하게 매수돼 고의적인 오심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단다. 그 때문에 당시 이탈리아 매체와 국민은 한국과 모레노 주심에 대한 맹비난을 퍼부었다. 1년 뒤 모레노는 이 판정 외의 기행적 판정 때문에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제명당했다. 승부조작설과 심판매수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지금도 이 쟁점은 한국 언론에서도 간혹 재론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 경기를 대전경기장에서 직접 가서 봤지만 상대팀의 거친 몸싸움만 못마땅했을 뿐 심판이 어떤 오심을 저질렀는지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이후 몇 차례 재방송 경기를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축구 경기를 관전하면서 선수들의 반칙 수를 세어 보라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 예견한 바대로 자기 팀의 반칙은 잘 보이지 않아 실제보다 적은 반칙 수를 보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정당당한 우리 팀은 사악한 상대방으로부터 늘 핍박받는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팀은 상대 팀의 반칙에도 불구하고 난관을 이겨내면서 끝내 승리하는 정의의 사도여야 한다. 하지만 자기편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시각은 경우에 따라 객관적인 진상을 가리는 들보가 되곤 한다. 우리에게는 보고 싶은 것만 보일 뿐 기대에 어긋난 일은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보고도 에둘러 무시하곤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탈리아 국민은 자기 팀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심이 정말 있었다면, 그렇다 하더라도 필자 눈에 인식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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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사실인정론`이라는 강의를 수년째 담당하고 있다. 이 수업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내린 판단이나 생각을 객관화시킬 것을 주문한다. 예컨대 사건의 유무죄에 관한 판단을 내리도록 한 다음, 그 답변에 대한 자신의 확신도는 몇 퍼센트인지를 묻는 식이다. 이어 답변에 배치되는 새로운 정황을 추가로 알려준 다음, 이전의 확신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생각해 볼 것을 주문한다. 생각의 변화를 스스로 느끼는 것은 정확한 사실 인정을 위한, `생각에 대한 생각` 훈련에 유용하다.

또 입장 바꿔 생각하기도 정확한 사실 인식에 유용한 수단이 된다. 실타래 엉키듯 복잡하게 꼬인 분쟁의 실체를 파고들어 진상을 알아보는 것이 법 실무가의 일상적 과제다. 이때 자기 입장을 벗어나는 일은 매우 긴요하다. 농담같이 들리겠지만 좋은 판단을 내리기 위한 연습으로, 자기 팀의 상대방 응원석에 가서 상대 팀 응원을 해보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을 일부러 바꿔 보는 자기 변신은 정치신념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능히 비판받을 것이다. 하지만 팩트 체크를 생업으로 삼는 진지한 판단자가 되고 싶다면, 우리가 반쪽만 보고 일상의 판단을 내려온 것을 자각하는 데에는 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의 재판에서도, 사람과 입장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판단자 변수가 문제된다. 사법 제도가 온통 불신을 받고 있는 위기의 시대를 거치고 있다. 이른바 사법농단을 담당할 특별재판부 법안 역시 이 판단자 변수로 인한 불신에 기초해 있다고 이해된다. 사실인정론 연구자로서 이 불신의 실체와 처방에 대한 공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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