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칼럼

[매경데스크] 포용적 성장이 성공하려면

  • 김인수 
  • 입력 : 2018.10.22 00:05:01   수정 :2018.10.22 13:30:35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656205 기사의 0번째 이미지
현 정부는 경제성장의 철학과 비전으로 `포용적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루 많은 사람에게 성장의 결과가 배분되고, 두루 혜택을 누리는 성장"이라고 그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설명은 뭔가 개운치 않다. 그의 설명은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우친 개념이다.
성장의 과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에게 분배된다는 뜻일 뿐, 어떻게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데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나 역시 `포용`이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개념이라고 믿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포용`이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해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가 포용적 사회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아이콘이 된 것도 이 같은 포용적 사회를 이룬 덕분이다.

그 같은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파괴적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든 기득권의 벽에 부딪친다. 그 기득권은 정치권력에 로비하고 압력을 가해 혁신을 막으려고 한다. 온갖 규제로 혁신적 사업을 불법화한다. 그 결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성장에 기여하는 권리를 박탈당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과연 `포용적 성장`이 가능한 사회일까.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한다는 이유로 최근 택시 기사들이 전면파업에 들어간 씁쓸한 장면을 보면서 `한국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이미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승차 공유 서비스가 일반화되고 있는데, 한국은 `카풀 서비스`조차 못하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승차 공유`와 관련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성장에 기여하고 싶어도 택시 기사들의 기득권 앞에서는 무력해 보인다.

물론 택시 기사들이 어마어마한 기득권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생계`이며 `생업`이다. `특권`을 요구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승차 공유 서비스로 인해 생계를 잃을 수 있다는 위협에 처한 그들의 심정도 절박한 것이다.

하지만 혁신은 우리가 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하게 마련이다. 한국이 승차 공유 서비스에서 뒤처지면, 다른 나라들은 멀찍이 앞서갈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다른 나라들이 관련 산업과 서비스를 발전시켜 우리보다 100보, 200보 앞서가는 상황을 그냥 지켜봐야만 한다.

게다가 자동차 수는 어차피 지금보다 급감할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되면 사람들은 차를 보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도로를 자율주행하고 있는 차를 불러 타고 다니기만 하면 된다. 자동차 공유의 시대는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지난 12일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존 김 뉴욕생명보험 사장은 2030년이면 승용차 수가 지금보다 80%는 줄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허용하되, 택시 기사들의 신규 공급을 축소하는 등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를 돌이켜보면 독일이 단지 기술이 부족해 증기선 운항이 늦어졌던 것도 아니었다. 발명가 디오니시우스 파팽은 세계 최초로 증기선을 만들어 독일의 한 강에서 운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뱃사공들이 그의 증기선에 올라타서 증기기관을 산산조각 냈다. 파팽은 빈털터리가 됐고, 이름 없는 묘지에 묻혔다. 기득권에 막히면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소용이 없는 법이다.

게다가 문재인정부는 `기득권 타파`를 외치는 정부 아니던가. 사회 엘리트 주류층만 기득권을 형성하는 게 아니다.
그들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회와 정부에 로비하는 것도 아니다. 주류층의 기득권뿐만 아니라 노조나 택시 기사들이 만들어놓은 기득권의 벽도 넘어서야 한다. 그들의 생계와 생업은 다른 방법으로 보호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득권에 안주하게 한다면 결국 미래 언젠가 찾아올 `파괴적 혁신` 앞에 그들은 무방비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김인수 오피니언부 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