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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스위스 크립토밸리에 없는 세 가지

  • 입력 : 2018.10.09 00:05:01   수정 :2018.10.10 18: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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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스위스에는 크립토밸리(Crypto Valley)가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남쪽으로 기차를 타고 30분쯤 가면 아름다운 호반에 자리 잡은 추크에 도착한다. 인구 12만4000명인 이 작은 주는 스위스가 자랑하는 블록체인의 성지(聖地)다. 맑은 공기, 쾌적한 생활 여건과 함께 오랜 전통의 금융과 잘 발달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덕분에 전 세계에서 3만2000개 기업이 몰려들어 고부가가치 일자리 11만개를 만들고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중에서 블록체인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만 400여 개, 재단도 3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추크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블록체인의 세계 중심지가 됐다. 2014년 여름 이더리움 가상화폐공개(ICO) 이후 비탈리크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와 전문가들이 기술 발전을 지원할 재단을 설립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스위스에서 가장 기업 친화적인 지방정부를 발견했고 그곳이 바로 추크였다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머리를 함께 맞대고 해결하려는 지방공무원들의 적극적 태도가 이들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불과 4년 만에 추크는 세계적인 블록체인 메카가 됐고, 작년 4대 글로벌 ICO는 물론 크고 작은 투자 유치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우리나라도 원희룡 지사가 제주도에 크립토밸리를 조성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경제특구를 조성해 미래형 산업으로 전환을 촉진하고, 청년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편리한 교통과 정보통신 인프라스트럭처 등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해 우수 기술인력이 몰려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조건들을 모두 갖춘 곳으로 우리나라에 제주도만 한 곳도 없다.

그런데 필자가 지난여름 방문해보니 추크에는 뜻밖에도 세 가지가 없었다. 첫째, 추크에는 경제특구가 없었다. 애초에 정부가 제정한 특별법도 없었다. 우수한 금융, ICT 산업 여건과 기업 친화적인 지방정부가 전 세계 블록체인 기업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스스로 경제특구가 된 것이다. 추크 지방정부는 과세·회계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비트코인의 유통을 공식 허용하는 촉매 역할만 했다. 그 대신 개인소득세 22%, 법인세 14%로 세율을 낮추고, 유명 대학과 연구소, 로펌, 전문가들을 유치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둘째, 추크에는 거래소가 없었다. 거래소가 가상화폐 열풍을 이끌었던 우리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크립토밸리에서 ICO가 자유롭게 허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스위스 은행법, 증권법과 자금세탁방지법(AML)의 엄격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 고객에게 계정을 나눠주고 예탁을 받을 때는 은행 허가를 받아야 하며, 실명(KYC)으로 거래되고 자료 관리도 명확히 해둬야 한다.

끝으로, 추크에는 관료주의가 없었다. 스위스 금융감독원(FINMA) 등 정부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정하고 자율규제 원칙 아래 나머지는 기업에 맡기고 있다. 외국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려면 무엇보다 지방정부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블록체인을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기업인들에게 한층 더 다가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 크립토밸리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수많은 규제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특구를 지정해야 한다면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만 해주기 바란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내년 블록체인 시범사업을 민간 제안 프로젝트 중에서 선정해 보텀업 방식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를 금융허브로 만들자는 구호가 난무했지만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추크는 싱가포르·홍콩·몰타·지브롤터·에스토니아 등과 경쟁해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우리가 이들 지역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부터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우태희 한국블록체인협회 산업발전위원장·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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