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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긴 일

  • 입력 : 2018.10.06 00:06:01   수정 :2018.10.10 18: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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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추석 연휴가 끝나고 주말을 넘기려던 시점, 미국 워싱턴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장면 1. 상원 법사위원회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 청문회. 예일대를 거쳐 판사로 승승장구했던 그 앞에 한 여교수가 등장했다. 과거 캐버노 지명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증언을 하기 위해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폭로였다.
정가는 벌집이 됐다. 캐버노 지명자는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호소했지만 51세의 여교수 또한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그를 통과시켜야 하는 공화당은 난감해졌다. 그래도 단일대오로 강행하기로 한다. 장면 2. 돌발사건이 터졌다. 다음날 법사위 표결 날, 캐버노 지지를 선언한 바 있는 공화당 의원이 의사당 엘리베이터에 타자 여성 두 명이 그를 가로막아선 것이다. "우리의 눈을 봐라. 크리스틴 포드 교수가 진실을 말했는데 당신은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잠자코 있어야 한다`고, `미국 여성들, 당신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당신이 이러면 안 된다. 내게서 눈을 떼지 마라." 구석에 몰려 있던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장면 3. 같은 시각. 표결에 들어가야 하는 법사위 의원들은 회의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의 상황을 꿰뚫어보듯 잘 알던데, 어찌된 일인가. 엘리베이터 사건이 CNN을 통해 미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장면 4. 우여곡절 끝에 회의가 시작됐다. 낙마시키겠다는 민주당 대 관철시키려는 공화당 간 전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의원들이 하나둘 회의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한두 명이더니 나중엔 위원장이 발언을 하는데 그의 앞 거의 모든 좌석이 텅 비는 상황에 이른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리에게 익숙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회의장에서 누군가의 고성이 터져 나오고 삿대질이 이어지며 급기야 몸으로 표결을 막는 난장이 벌어져야 하지만 이들은 조용히 협상을 하고 있었다. 일단 법사위 투표라는 정해진 의사일정을 따르되 지명자에 대한 FBI 수사를 요청하기로 한다. 이후 본회의 투표가 이뤄지게 될 것이고 그때 지명자의 운명도 판가름날 것이다.

파국으로 갈 뻔한 상황을 절묘하게 돌렸다. 알고 보니 고안자가 따로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그 의원이 동료 의원들을 밖으로 불러내 FBI 조사를 해보는 것으로 공화당에는 양보를, 민주당에는 명분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죄를 안 지었는데 남성이 낙인찍히는 시대가 됐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선거 목전에서 공화당의 달라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격한 질서와 전통을 숭앙하며 누가 뭐라 하든, 특히 정교하고 민첩한 NGO의 액션엔 더더욱 끄떡없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정치학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빠르게 권력 분산이 진행되는 것일까. 국민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가 과거보다 훨씬 짧고 직접적이다. 특히 이 원심분리 같은 힘은 소셜미디어, 스마트폰을 통해 파괴력을 배가한다. 막스 베버가 정치인의 뿌리 깊은 갈망이라고 간파한 우월감을 요즘 같을 때 디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미국 의원들은 쓴맛을 본 바 있다. 티파티에 이어 레오 린백 3세의 슈퍼팩은 자신의 자리 보전에만 급급했다는 평가를 받은 현역 정치인들을 `솎아`냈다. 연방의원 봉직 횟수 다 합쳐서 65년이나 되는 공화당 두 명, 민주당 두 명. 골고루 비율을 맞춰서 말이다.

기득권이란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소외가 고착될수록 전통적 권위는 퇴조하고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들이 변방의 부상을 이끈다. 언론은 찍는 대로 낸다. 성과가 전역에 공개되고 일거수일투족이 검증되니 당파적 행태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스템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래서 균형과 견제의 법사위 합작품도 낸 게 아닐까. 권력 재분배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차제에 혁신 아이디어를 고민한다 하니 개방과 참여의 시민사회에서, 첨단 IT에서. 그동안 주류사회가 변두리에 두려 했던 곳들에서 끌어올리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김은혜 MBN 앵커·특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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