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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기적은 있다

  • 입력 : 2018.10.06 0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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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일본 도쿄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메뉴가 셋밖에 되지 않지만 이 식당에서는 주문한 대로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손님들이 화내기는커녕 무척이나 즐거워한다. 음식이 제대로 나오면 실망할 지경이다.
몰래카메라나 예능은 아니다. 주객이 모두 진지하다. 종업원들이 최선을 다하는데도 실수 연발일 뿐이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는 이가 모두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웅진지식하우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이 왜 멋진 존재인가.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뇌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사람한테서 가장 멋진 것을 빼앗아선 안 된다." 치매 환자도 보호받고 통제당하는 반쪽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으로 멋있게 살고 싶다. 사회가 할 일은 무엇보다 이들이 끝까지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깜박 잊었지만, 틀렸지만, 괜찮아." 우리는 계약의 존재들. 우리 무의식은 돈을 치르면 정해진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고장 난 자판기 앞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성을 잃고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이 식당에선 환대가 계약을 대체한다. 사람들은 음식이 아니라 감동을 먹는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생은 자판기가 아니다. 돈만 넣으면 바라는 게 무엇이든 쏟아지는 `등가교환`의 세상은 허위에 불과하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 중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랑하는 연인, 믿음직한 친구, 존경하는 스승…. 이 목록은 무한하다.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에 따르면 "돈은 비천한 것이다. 만물에 대한 등가물이기 때문"이다. 돈과 교환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돈을 향해 추락하는 하류 지향이 된다. 고귀한 것은 모두 단 하나만 존재하며 절대로 시장에 나오지 않는 까닭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존재함을 깨달을 때마다 우리는 기적의 생생한 현존을 느낀다.
강자와 약자의 등가교환은 그 자체로 차별이다. 치매 환자들의 실수를 용납하는 `안전하고 행복한 곳`을 실현함으로써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사람들이 즐거움 속에서 자발적으로 차별을 해소하고 환대를 실천하는 기적의 성소(聖所)가 됐다. "치매 환자를 대할 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을 것이다." 기적은 분명히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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