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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통계왜곡의 수혜자와 피해자

  • 입력 : 2018.10.02 00:06:01   수정 :2018.10.10 18: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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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강행과 통계 왜곡 논란 과정에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경질되자, 언론에 황 전 청장을 그리스 금융위기 때 형사기소를 당했던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 전 통계청장과 비교하는 글들이 등장한다.

게오르기우는 "그리스에서는 통계가 격투기다. 통계를 조작하지 않은 게 나를 기소한 이유"라며 법정 투쟁을 이어갔다. 황 전 청장도 청와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아서 경질됐다는 진단이 따라온다.
국내 언론 보도에는 그리스 정부가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고 한 일이 국민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만 나온다.

그러나 더 큰 이득을 얻은 세력이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국채를 대량 매입해 장부상 축소된 것으로 만들어주고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뒤 그리스 정부에 되돌려주는 `은밀한 작업`을 해줬다. 이 과정에서 골드만삭스는 무려 6억유로(약 7800억원)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한다.

골드만삭스가 실제 번 돈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JP모건 등 다른 투자은행들과 함께 그리스 금융위기 가능성에 투기할 수 있는 `이트락스(iTraxx)`라는 신용부도스왑(CDS)지수 거래시장을 런던에 만들어냈다. 당시 그리스 부채 축소를 알고 있는 극소수 금융인들에게는 언젠가 이 사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또 그 사실을 퍼뜨리면 `쇼트(short)`로 떼돈을 벌 수 있는 `황금어장`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대규모 쇼트가 벌어졌고 iTraxx지수 수요도 폭증했다. 금융위기 정점이던 2010년 초 지수 계약액이 1월 529억달러(약 60조원)에 달했고 2월에는 1093억달러(약 120조원)로 두 배나 껑충 뛰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통계 왜곡에는 항상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들은 보통 그리스 국민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다. 국내에서 문제가 된 가계소득 통계도 일반 국민은 그 내용을 거의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은 필요에 맞게 통계를 왜곡하거나 조작할 유인을 갖고 있다.

필자는 이번 가계소득 통계 논란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가 학자 시절 통계를 왜곡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 2015년 출간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당시 장 교수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2015년 관훈토론회에서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은 세계 최악"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에 이 책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초등학생이 봐도 말이 안 되는 괴담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한국의 임금 불평등도가 29위인데, 비정규직을 감안하면 꼴찌일 것이라고 `짐작`한 뒤, 그러니까 전 세계 196개국 중에서 꼴찌라고 비약했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는 말을 제목과 책 중간에 강조했지만, 본문에서는 해명하지 않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그는 청와대에 입성하는 수혜자가 됐다.

그 피해자는 국민이다. 국민을 과도한 `분노`에 빠지게 만들고 과도한 정책을 내놓게 해서 시행착오와 낭비를 양산한다.

정부는 벌써 통계 전문가들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 분기별 가계소득 통계를 되살리기 위해 매년 150억원 이상의 예산을 책정해놓았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분열이 악화되는 것이다. 통계 수치에 동의하지만 그 해석이 서로 다르다면 얼마든지 토론하고 간극을 줄여나갈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수치 자체를 믿지 못하면 대화의 여지가 없어진다.
정책에 대한 대외 신뢰도까지 떨어진다. 그리스와 유사한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장 실장은 자신이 최고위 경제정책 결정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낫다. 차제에 문 대통령은 통계청장도 객관적 통계를 내놓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광범위하게 동의할 수 있는 인물로 재임명해야 할 것이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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