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오피니언

[음식 한류이야기] 아버지의 냉면

  • 입력 : 2018.01.26 15:53:12   수정 :2018.01.26 17:01:37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60979 기사의 0번째 이미지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면 빠짐없이 꼭 준비되는 것은 냉면이다. 하루라도 냉면을 못 드신 날이면 "오늘은 냉면 맛을 못 봤네"라며 아쉬워하던 분이라 제사상에 올라가는 품목에 이 한 가지가 더해지는 것이다. 가족과 같이 외국에 나가 살던 때 집에서 냉면을 준비하기란 어려워 어머니는 세 가지 고기 국물이 더해지는 평안도식 김치를 떨어지지 않게 담가 놓고 매일 밤 김치말이를 준비해 드리곤 하였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냉면을 찾는 마음은 냉면의 맛을 너무 좋아하는 취향을 넘어 어떤 집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평양남도 강서 대지주의 장손으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던 아버지는 출신 성분으로 인한 숙청을 피해 할아버지와 단 하룻밤만 피해보자 했던 것이 가족과의 영이별이 되었던 17살의 피란길을 잊지 못했다. 처음 경험해 본 전쟁의 배고픔은 일생 대식가라는 칭호를 안겨준 어떤 결핍을 대신하는 갈증이 되었다. 지금은 분점이 몇 개나 되는 대덕의 유명한 냉면집을 처음 찾았던 1970년대 말, 한 자리에서 네 그릇을 뚝딱 먹어 치운 일은 그 맛집이 낸 책에도 적혀 있는 일화가 되었다. 피란길에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며 길가에서 아이를 업고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단 한번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손에 지폐를 꼭 쥐여 주며 아이를 배불리 먹이라는 말을 하곤 했던 아버지에게 가장 큰 아픔은 자신의 어머니와의 이별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어머니와 아들의 애틋한 장면이라도 나오게 되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 내리던 아버지. 노제 때 마지막으로 들른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앉아 연구하셨다는 그 책상에 붙여진 할머니 사진과 지금은 저수지로 바뀌었다는 고향 강서 땅의 사진을 보고 우리 삼남매는 그 그리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살아생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고향과 엄마의 품을 대신하는 유일한 것, 그러니 그렇게 유난히도 찾으셨던 냉면의 맛이 이제는 내게 아버지를 추억하게 하는 소중한 맛이 되었다.

불과 10여 일 후에 열릴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이 공동으로 입장하게 된다.

전쟁 통에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경험했던 부모님 모두 강서 출신으로 귀 아프게 분단의 아픔을 듣고 자란 나는 아직 북한의 속내를 알지 못해 올림픽 후 그들의 태도가 어찌 변할지 두렵다.

60979 기사의 1번째 이미지
그러나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타이틀을 가진 우리나라, 개방되지 않은 유일한 공산권 나라인 북한에도 거스르지 못할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확신한다. 시대의 가치는 어느 때보다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고 평등한 인류의 자유를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2014년 우리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라는 경제적 관념만이 적용된 발언이 신문 지면 전체를 덮은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팠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두 동강이 난 민족이 다시 결합됨에 있어 넘어야 할 산은 많을 것인데 이에 대해 더 잘사는 경제적 이해타산으로만 통일을 바라본다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독을 안고 난 후 겪었던 서독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를 우리는 어찌 겪어 내게 될 것인가. 물론 독일은 이 역경을 딛고 현재 유럽연합(EU)을 이끄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어 있다.
이에 비해 같은 해 유엔 대사로 재임했던 오준 전 대사는 실향민의 한 사람으로 북한 민족의 인권 문제에 대한 감동적인 연설을 하여 전 세계 유엔 대사들의 심금을 울렸다.

때 이른 상상이겠지만 만약 우리에게 분단이 풀려 자유로이 왕래하며 다시는 가족의 생이별이 없는 시대가 온다면 나는 가장 먼저 부모님이 그리도 말씀하셨던 물 맑고 미인 많다는 강서를 찾을 것이다. 육수 부어 먹는 남쪽의 진주식 냉면을 들고 그 땅의 사람들에게 먹여도 보고 그 물 좋다는 강서의 냉면을 나도 꼭 먹어 보고 싶다. 아버지의 사진 한 장 들고 한 번 뵙지도 못한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 절도 하리라. "할만! 고저 음식이라는 게 나눠야 최고 아니갔습네까? 남쪽 냉면 맛 좀 한 번 드셔 보시라요"하면서 말이다.

[한윤주 콩두 푸드&컬쳐 대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