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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평화, 가을 달빛에 담긴 가치

  • 입력 : 2018.09.29 00:04:01   수정 :2018.10.01 1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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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의 서정은 달빛에 맺혀 있다. 구름 너머에 있든 별 사이에 드러나 있든 달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렇게 달라지는 모양 가운데 손톱 같은 초승달은 우연히 발견하고, 그믐에는 그런 가냘픔마저 볼 수 없어 잊고 지내기 일쑤이나, 보름달은 커다란 기와집 안뜰에 나선 이부터 세 칸 초가집 지붕 위에 핀 박꽃까지 기다렸다 구경하는 달이다. 그런 달을 화폭에 담지 않은 시대가 있을 리 없고, 마다할 화가가 있었을 리 없다.
동양 그림의 역사에서는 중국 동정호(洞庭湖) 위를 떠가던 보름달이 가장 유명했기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이미지로 재현돼 누군가의 글 상자와 서화 꾸러미에 들어갔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그림은 물론 백자항아리, 청화백자나 네모난 연적에 그려지고, 심지어 20세기에 들어선 뒤에 만든 자개장식에도 동정호의 가을 달은 흔한 소재가 됐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그림 가운데 달밤을 소재로 한 여러 그림 중 압권이라 할 만한 작품은 김두량(金斗樑·1696~1763)의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다. 그림에 적혀 있는 관지로 보면 1744년 음력 8월에 그렸다고 하니 추석을 갓 지낸 요즘 밤하늘의 달을 소재로 한 작품이며, 높이가 81㎝를 넘으니 흔하지 않은 대작이다.

이 그림은 크기도 크거니와, 당시 임금 영조가 김두량의 그림 실력을 인정해 종신토록 봉급을 지급하라고 했다고 할 만한 솜씨를 볼 수 있다. 가까이 보이는 왼편 나무와 바위가 반대편보다 먹색이 짙으며 붓질도 힘차고, 여울 너머 숲은 부드러운 안개에 휘감겨 그것과 대조를 이룬다. 그 사이의 여울은 싸늘한 가을 물의 청량한 울림을 쏟아내며 아래로 치닫는다. 그리고 수풀 위, 그 모든 것을 고요히 비추고 있는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달이 나무 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마치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한없이 깊은 밤하늘의 텅 빔 속에서 빛나는 `구멍`처럼도 보여 다른 세상과 이어질 신비로운 통로의 입구인가 하며 상상도 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땅 위에 묶인 존재들이 온몸으로 그 빛을 받자 그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듯 몸부림치는 양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화면에 가득한 달빛 덕분이다. 달빛이 있기에 장정 같은 나무둥치들이 검게 서고, 달리는 여울의 물빛도 빛나며, 소리 없이 나무 허리를 휘감는 안개의 몸짓도 드러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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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 달의 환한 금빛 자태도 밤하늘의 어둠이 배경으로 깔려 있기에 더욱 돋보인다. 김두량의 이 그림에서 보듯이 먹으로 그린 우리 옛 그림에서 달은 깊은 밤하늘의 도움을 받도록 그려진다. 그러나 별들은 달빛 뒤에 숨어야 하며 지상의 만물도 숨을 죽인 채 검은 하늘에 있는 둥글디둥근 존재를 구경하며 탄식하기 마련이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달을 구경하고 그 달을 이야기하며,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나날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웃으며 이야기하다 달빛 아래 더 빛나는 상대의 얼굴을 문득 발견해 환한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마루 가득한 달빛 속에 떠난 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토하다 달구경하는 이웃의 소리에 절로 밤하늘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을 것이다.


모였다 흩어지고 채워졌다 비워지는 세상 이치를 세상 사람 모두에게 차별 없이 보여주는 것이 달빛이며, 그것을 그림으로 만들어 구경함으로써 그 채움과 비움이 엇갈리는 순간을 시각화해 공유한다. 채움이란 영원히 가지고자 하는 집착이 아니요, 비움이란 자포자기의 허무주의가 아니다. 달을 보며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영원히 채워지거나 영원히 비워진 상태로 남는 것이 아닌 차별 없는 평화이며, 그것만은 우리 모두가 골고루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할 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인 가치라는 사실이다.

저 달 그림에는 그런 `가치`가 가득하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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