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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클로즈업] 영국인 아버지를 둔 오촌 조카

  • 전지현 
  • 입력 : 2018.09.15 00:07:01   수정 :2018.09.16 13: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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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촌 조카의 돌잔치가 다가오고 있다. 사촌 여동생이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을 보니까 이제 막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지지만 뚝심 있게 목표물을 향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오촌 조카는 잘생긴 사내 아기다.
뽀얀 피부에 금발 머리, 진한 쌍꺼풀,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다. 아빠가 영국인이기 때문이다. 사촌 여동생은 8년 전 교환학생으로 간 영국 대학에서 남편을 만났다. 삼촌과 숙모는 외국인 사위가 내키지 않았지만 3년에 걸친 연애에 두 손을 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2013년 영국과 한국에서 결혼식을 두 번 올릴 수 있었다. 사촌 제부는 아내를 위해 한국까지 와서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촌 여동생은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처음에 일가친척들은 영국인 사촌 제부를 부담스러워했다.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게 힘들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된장과 고추장뿐만 아니라 젓갈과 산낙지까지 잘 먹는 사촌 제부의 식성을 칭찬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다행히 결혼 5년째에 접어든 사촌 제부의 한국어가 부쩍 늘었다. 이제는 술을 강권하는 친척들과도 잘 어울린다. 그의 아들도 아빠를 닮아 적응력이 빠른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낯을 안 가리고 잘 논다. 오촌 조카는 나들이를 가면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외국인을 보기 힘든 지방 도시여서다. 사람들은 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아기 윌리엄과 닮았다면서 호감을 보인다. 윌리엄 아버지는 호주 출신 개그맨 샘 해밍턴으로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인형같이 생긴 윌리엄은 엉뚱한 장난꾸러기이지만 동생 벤을 챙길 줄 아는 착한 아기다. 일요일 오후 이 형제의 재롱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TV로 익숙해지고 다문화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윌리엄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축구선수 박주호의 자녀 나은이와 건후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는 스위스인이다. 네 살 나은이는 스페인어와 영어, 독일어, 한국어까지 구사해 대한민국 부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국적과 인종이 다른 남녀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TV 전파를 타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있다. 사실 15년 전만 해도 교과서와 국가 정책 차원에서 단일민족을 내세운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는 외면당했다.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7세 모델 한현민은 학창 시절 까만 피부색 때문에 `흑형` `모글리` 등으로 불리며 왕따를 당했다.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서울 이태원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얼큰한 순댓국에 청양고추를 팍팍 넣어 먹고 영어 울렁증이 있는 한국인이다.

네덜란드계 캐나다인 아버지를 둔 17세 아이돌 가수 전소미 역시 따가운 시선을 견디면서 자라야 했다. 학교에서 `잡종`이라는 놀림을 받아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출산율이 급락하고 농촌 총각들이 중국과 베트남 등 외국인 여성들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면서 다문화를 품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2005년부터 정부 정책 차원에서 다문화 캠페인을 확산시키면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촌 조카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우선 어린이집에서 또래들과 무난히 어울릴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다.
철없는 아이들이 외모가 다른 다문화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초·중·고등학교에서 잘 적응할지, 군대 생활을 무사히 할 수 있을지….

내색을 잘 하지 않지만 여전히 다문화 자녀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아무도 모른다. 내 오촌 조카가 큰 상처 없이 무사히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른이 돼서도 지금처럼 구김살 없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전지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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