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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詩人의 생일

  • 입력 : 2018.09.15 00:06:01   수정 :2018.09.17 09: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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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으로 존경하는 시인이 한 분 계시다. 스승이기도 하다. 나는 남 보기 번듯한 학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어려운 시절에 어렵게 공부하느라 늘 독학을 한 것 같고 평생 스승을 찾아 헤맨 느낌인데 나이 들어서야 만났다.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을. 49세에는 학문의 스승을, 55세에는 시의 스승을 만났다.
크게 감사하는 일생의 행운이지만, 늦게 만난 그분들이 이제는 연세가 만만치 않아 좀 더 일찍 만나 좀 더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고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나는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아서다. 제자가 무얼 하겠는가. 학문의 스승을 위해서는 좋은 학술서를 써서 보답하려 하고, 시의 스승을 위해서는 내가 시인 노릇까지는 못하고 사는 터라 운영하는 서원(書院) 후원에 그 이름과 그 시를 담은 시인의 뜰을 만들어 가꾸고 있다. 물론 그의 시(詩)들을 전하려 한다.

본디부터 유난히 허약하셨던 시인이 올해 85세 생신을 맞았다. 당사자는 없는 채로 먼 곳에서 내가 작은 잔치를 벌였다. 그 이름을 딴 뜰에서 독자들과 함께 그 시를 읽는 모임을 가진 것.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중에는 행사를 촬영해 DVD로 갈무리해준 젊은 예술가들도 있었다. 고운 시 엽서도 만들어 나누었고 앨범도 만들었다. 우편물을 받은 시인께서 참으로 기뻐하셨다. 땅덩이 위의 아주 먼 한 점 위에 당신 이름을 단 뜰이 있건만 그곳까지 와볼 체력은 안되는 게 본인도 서운하실 것 같고 나도 서운해서 벌인 일이었다.

독일 독자들이 벌이는 한 노시인을 위한 생일 `잔치`는 내가 벌인 작은 일과는 비할 바가 없다. 시인이 10여 년 만에 새 시집(`네 자신과의 함께하는 시간`)을 펴냈는데 출간 직후 초판 5000부가 매진되었다. 벌써 재판을 찍었고 매우 이례적으로 시집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독자의 구미에 맞춘 가벼운 책도 아니다. 책을 받은 나도 정좌를 하고 곧바로 다 번역했을 만큼 깊고도 짙게, 돌아보는 삶에 대한 성찰이 배었고 마지막 시집일 것도 같아 마음 아픈 시편들이다.

생일 당일을 전후해서는 시인에게 보내진 축하편지들이 엄청났던 것 같다. 답장은 300통밖에 못 쓰고(쉽게 적당히 형식적으로 답을 쓰는 분이 아니다. 체력이 다하신 게 역력하다), 대신 책에 사인을 해서 700여 권을 우송했다고 한다. 축하편지를 보낸 사람들 가운데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있다. 그 바쁜 사람이 휴가에 시인을 찾기도 해서 놀란 적이 있었다.

노시인에게 한 사회가 표하는 이런 경의가 놀랍다. 대체 시인이 무얼 했기에 하고 묻게 된다.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를 공들여 썼고, 평생을 올곧게 살아왔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사람에게 성의를 다한다. 독자들이 보내오는 수많은 편지들에 대해서도 정성을 다한 답장을, 평생 하루에도 스무 통은 써오신 분이다.

아주 예전에 며칠 한국에 다녀가신 적이 있는데, 오시기 전에 이미 우리 고전문학 번역을 찾아 읽고 율곡의 고산구곡가에 `메아리 시조`라는 답시를 보내왔고, 돌아가서 펴낸 시집 `보리수의 밤`에는 한 편 한 편을 절창이라 부를 한국 시 열두 편을 담았다. 시조 율까지 정확히 맞추어 쓴 시 `옛 문체로 쓴 한국의 귀한 옛날일`에는 `600년 전 정몽주의 꼿꼿한 바른 걸음을 기리며 한국 친구들에게`라는 헌사를 덧붙였다. 자신의 시를 아껴준 한국인들에 대한 시인의 지극한 감사 표시였다. 그 독일어 시조는 돌에 새겨져 지금, 도나우강 물굽이가 내려다보이는 `라이너 쿤체 재단` 뜰에, 또 내가 가꾸고 있는 여백서원의 `라이너 쿤체 뜰`에 놓여 있다.

그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공항역으로 오는데 이어지는 통로 벽에 내걸린 대형 광고판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고 있는 어린이, 책을 읽고 있는 청년, 그리고 그사이에 순박해 보이는 슈퍼맨 사진과 아픈 아이와 코를 맞추는 어릿광대 차림의 의사 사진이 끼어 있었다. 첫 사진에는 `삶을 위한 찬스`, 둘째 사진에는 `세계를 발견하기`, 가운데 사진에는 `슈퍼 미디어 타임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코멘트가 필요 없는 남은 하나의 사진 밑에는 작게 `웃음을 선사하세요`라고 적혀 있다. 노시인의 생일을 챙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광고인 것 같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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