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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샤워실의 바보들

  • 윤경호 
  • 입력 : 2018.09.13 00:07:01   수정 :2018.09.13 17: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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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에서 물을 틀 때는 꼭지를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물을 적정 온도로 맞추기까지 소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성격 급한 사람은 더운물 찬물 손잡이를 한번에 끝까지 돌려버린다. 십중팔구 뜨거운 물에 데거나 찬물을 뒤집어써 낭패를 당한다.
봉변을 당하지 않고 샤워하고 싶으면 시간이 걸려도 조금씩 찬물과 더운물을 조절하는 게 좋다. 지키면 도움이 되는 생활 수칙이고 과거 경험칙에서 얻은 교훈이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런 성격 급한 이들을 가리켜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라고 불렀다. 샤워실에서는 조바심을 경계하라고 그는 조언했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거두다. 노벨경제학상도 받았다. 그가 빗댄 샤워실의 바보는 매사에 나서 시장에 끼어드는 정부와 정책 집행자들이었다. 그때까지 득의양양하던 케인스파도 동시에 겨냥한 비판이었다.

프리드먼은 경제란 시장에서 생기는 스스로의 자정 기능 덕분에 알아서 안정을 찾아간다고 봤다. 따라서 정부의 시장 개입은 가급적 자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기가 과열 혹은 침체 기미를 보인다고 사사건건 개입하다가는 되레 역효과만 생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런 정책은 백발백중 과하거나 변덕스럽게 우왕좌왕하기 쉽고 결과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특히 중앙은행의 섣부른 냉탕온탕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경고했다. 금리 인상 시기를 조금만 놓치면 물가 불안에 흠뻑 고생한 뒤 보이지 않는 도둑에게 가처분소득을 빼앗기고 만다. 지나치게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버리면 경기를 꺾어버려 실업의 고통을 겪게 된다. 중앙은행은 전체를 잘 보고 완만하게 정책을 펼쳐야지 섣부르게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당시 각국 중앙은행 정책은 통화량 조절에 주로 의존하고 있었던 만큼 돈 풀기나 돈 조이기를 꾸준하고 진득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경제정책은 시행 후 나타날 효과를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튀어나오거나 시차 때문에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단계적으로 조심스럽게 시행해야 하는 이유다. 과열이든 침체든 인위적인 정책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겠다면 어린아이 걸음마처럼 차근차근 나서라고 했다. 처음 가는 컴컴한 동네에서 아무리 급하거나 무섭다고 해도 돌부리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뛰지 않는 게 더 낫다. 마음이 급하다고 무작정 뛰어가다가는 걸려 넘어질 확률이 더 높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을 끌고 가는 이들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차라리 샤워실의 바보가 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 펼치는 정책이라도 일선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과 반발이 나오면 바꿔야 한다. 용감하게 아예 접지 못한다면 최소한 속도 조절이라도 하는 게 맞는다. 최저임금 인상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통령선거 때 내건 공약이라 첫해 당장 16.9%를 올렸다. 그런데 혜택을 입고 박수를 보낼 줄 알았던 이들이 오히려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도 둘째 해 10.9% 인상을 밀어붙였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 몸 던지며 나선 건 예상 밖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부동산 정책도 비슷하다. 1년 전 8·2 대책을 내놓으면서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 않고 못 배길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똑똑한 한 채로의 수요만 더 부채질해 강남 지역을 넘어 서울 전역 집값만 잔뜩 끌어올렸다. 아직도 정부와 맞서 반대로 가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비아냥과 조롱이 넘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 아래로 곤두박질친 이유를 나는 쉽게 읽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고집과 아마추어 같은 부동산 정책을 보며 지지자들조차 받았을 상실감과 실망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샤워실의 바보라는 말을 듣더라도 기조를 빨리 선회하지 않으면 지지율이 더 떨어지는 사태는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고집을 접어야 한다. 남아 있는 임기 3년 반이 지나간 1년 반보다 더 길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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