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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억울한 옥살이…오판 구명운동

  • 입력 : 2018.09.08 00:07:01   수정 :2018.09.08 17: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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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처절하게 법정 투쟁을 벌이는 영화나 소설 속 장면은 참으로 눈물겹다. 대부분 이런 스토리들은 실화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다. 실제 현실 재판에서 이런 곤경을 이겨내기까지 거쳐야 할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그 험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억울한 오판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하는 호소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이 재심으로 구명된 사례는 드문 편이다. 과연 현실 재판에서 오판은 정말 드문 것일까. 이런 관심사로 진행된 몇몇 해외 연구들을 보면 드러난 오판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란다. 잠재해 있는 오판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살인 사건, 특히 비면식범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강력사건에서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추리를 필요로 한다. 잘못된 추리는 곧 오판으로 연결되는 지름길이다. 사건 현장이 잘 보존되고 그 현장에서 범인이 남겨 둔 여러 흔적들은 진범 검거의 주요한 단서가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DNA 유전자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물증이다.

하지만 DNA 검사 기법이 수사와 재판 현장에서 활용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미국에서는 1990년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검사 기법이 활용됐다. 우리 경우는 10년은 더 걸렸다. 대법원이 DNA 증거를 유력한 과학적 증거로 승인한 것도 2007년의 일이다.

DNA 증거 때문에 새로운 문제 제기가 가능하게 됐다. 이전에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사람들에 대해 이 검사를 다시 해 본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물론 과거 범행 현장 증거들이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지역 단위의 과학수사대에 마침 과거 범죄의 현장 증거물들이 보존된 경우가 왕왕 있었기에 이런 재검증이 가능했다. 주로 이 재검증은 1992년에 출범하여 오판 구명에 헌신한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라고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몇몇 사건들에서 DNA 증거는 너무나도 명백히 그가 범인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 단체 출범 이래 지금까지 26년간의 활동 성과는 만만치 않다. 모두 362명이나 되는 살인범, 강도범으로 오인된 사람들이 구제됐다. 이들이 교도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간신히 풀려나기까지 평균 잡아 14년이나 걸렸다. 심지어 이들 무고한 자 중에 스무 명은 사형선고를 받아 형 집행 대기 중에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다. 사형 존폐 논쟁에 반드시 참고할 통계다.

이 검사 결과로 158명의 진범이 붙잡혔다. 이들 중 150명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 덕분에 사회 속에서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그중 80명은 성폭력, 35명은 살인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유죄 오판은 무고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자, 진범을 방치하고 나아가 더 이어지는 재범을 막지 못하는 사회적 해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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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오판 사태가 일어난 것일까. 분석 결과로는 허위 자백, 목격자의 범인 식별 지목 오류, 과학적 증거의 남용, 변호사의 부실 변론,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등이 거론되고 있다.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판사가 제대로 재판을 못한 탓이다. 이들 362명 중 대부분은 거듭된 불복 절차를 통해 억울함을 줄곧 호소했다. 하지만 그 사건 상급심 판사들은 모두 마이동풍, 오불관언으로 유죄를 유지했다.

우리의 형사항소심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고 그 운영 실태다. 오히려 상급심의 실질적 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미국의 개혁 논의를 꼭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필자는 외국 사법제도를 모델로 삼아 우리 제도의 개선을 위해 연구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남의 나라 제도의 좋은 것만 말할 것이 아니라 그 운용 현실을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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