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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은(銀)엉겅퀴

  • 입력 : 2018.08.17 17:30:37   수정 :2018.08.17 17: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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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엉겅퀴라는 식물이 있다. 좀 억센 잎은 보통 엉겅퀴와 비슷하지만 민들레처럼 키가 작은데 그 납작한 풀이 피워내는 딱 한 송이 꽃이 빛을 발하는 흰빛이어서 이름이 `은`엉겅퀴이다. 우리나라에는 없고 독일에 있는데 야생의 잡초이건만 보호종이다. 그런 은엉겅퀴가 내가 돌보는 여백 서원에서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후원 한쪽에 시인의 이름을 가진 뜰이 있는데 그 안에 시 `은엉겅퀴`가 돌에 새겨져 서 있다. 이 시비는 서원을 찾는 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의 하나이다. 식물도 작지만 시도 짧다.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남들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라는 것이 시의 전문이다. 식물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을뿐더러 -그 낮은 자세, 그러나 빛남-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 것 같다. 어떻게든 남들을 누르려는 생각이 팽배한 세태에 많이 치여온 탓일 게다. 작은 돌에 새겨 두었더니 누가 크고 아름다운 돌로 바꾸어주고, 은엉겅퀴 비슷한 종의 엉겅퀴 씨앗을 구해서 싹 틔워 심어준 일도 있다. 그 뜰은, 작은 연못이 있고 2칸 한옥 정자가 가운데 있는 고즈넉한 전통적 공간이지만, 독일 시인의 이름을 붙였다(라이너 쿤체 뜰). 서원을 찾는 분들이 각별히, 특히 서원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학자,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세상 어느 한 모퉁이에 시를 담은 뜰이, 그것도 자국 시인의 시편들을 돌에 새겨 둔 뜰이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시 `은엉겅퀴`는 그 뜰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데, 최근에 진짜 은엉겅퀴가 서원에 왔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화가 한 명과 조각가 한 명이 그야말로 `안고` 왔다. 작년 6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가서 이 뜰 이야기를 한 일이 있는데, 그때 그 강연을 들은 사람 둘이, 자기들도 이 뜰을 잘 보고 나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내 강연이 끝나고 어디선가 석남꽃 한 송이를 꺾어 악보종이에 말아서 강연 잘 들었다며 건네주었던 사람들이다. 작아도 참 귀한 꽃다발이라 내가 오래 간직했었다. 이번에는 그저 잠깐 나가서 꺾어온 꽃이 아니라 진짜 은엉겅퀴를 어렵사리 구해왔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서남쪽 끝인데 독일 중부인 튀링겐의 옛 고향 숲으로 가서 어린 시절 많이 보았던 은엉겅퀴를 찾아 한 송이를 꺾어 왔다는 것이다. 고향 숲에서 프라이부르크까지 돌아가는 동안 벌써 말랐는데, 한국까지 오자니 마른 꽃이 부서질까 염려되어 꽃은 따로 떼어 간직하고 뻗친 잎과 줄기는 물에 적셔 부드럽게 한 다음 붓 대롱에 말아 넣어 가지고 왔고, 와서야 꺼내어 펴 말려서 다시 꽃과 붙여 투명 케이스에 넣은 것을-내게 잠시 눈을 감으라 한 다음-눈앞에 내놓았다. 얼마나 귀한지. 말라서도 빛을 내는 꽃 한 송이가 있어 지금 서원은 한 모퉁이가 환하다.

`시인의 뜰`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서원에서는 조용한 교류를 도모하고 있다. 한 사람이 살며 일하도록 지은 작디작은 고운 집, 우정(友亭)은 외국 학자,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쓰인다. 예전에 내게, 제자들에게, 또 내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가 외국에서 주어졌을 때 감사했던 마음을 잊지 못해 벌인 일이다. 우리도 받기만 하는 때는 지나지 않았는가. 그런 건 나랏일이라거나 어디서 지원을 받아 할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구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은엉겅퀴를 안고 온 독일 작가들이 지금 `우정`에 머물며 작업하고 있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도 할 거라, 독한 무더위 속에서도 씩씩하게 작업을 하며 그 과정을 열심히 독일로 전송하고, 간간이 서원 일도 돕는다. 나무에 물을 주고 있자면 더위에 타버린 나뭇잎들을 따주기도 하고 슬며시 물호스를 빼앗아 가기도 한다. 뭐든 도와주려 애쓴다. 고마워서, 또 꽃 한 송이며 시 한 편에 모이는 마음이 소중하고 무엇보다 이렇게 마음으로 만나지는 `세계`가 좋아서, `3인분 노비`가 직함이라고 말하곤 하는 나도 잠깐 사역의 고단함을 잊는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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