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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한류 이야기] 귀하는 무엇을 내어줄 수 있소

  • 입력 : 2018.08.17 17: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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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좀 싱겁지 않소? 조선간장을 좀 더 넣어 보시오.` 한창 인기몰이 중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화법을 따라 말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우리 주방의 대화 모습이다. 근대 소설에서나 읽었을 법한 이 화법이 현대에 와서 지인들끼리 주고받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상 댓글에 자주 쓰이는 것을 보니 하나의 드라마가 끼치는 영향력이 참으로 흥미롭다.

많은 제작비와 새로운 방송 형태의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각 나라 언어 자막으로 달려 동시 방영되는 최초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지만 음식을 만드는 나는 다른 관점에서 구한말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를 보게 된다.

가배(커피)를 처음 맛보고 사약과 같은 쓴맛에 뱉어버리지만 신지식층으로 보이기 위해 들이켜는 설정, 꿀이나 조청으로 단맛을 내던 시대에 처음으로 맛보는 사탕의 달콤한 맛으로 인해 엿장수들 장사가 안 된다는 설정, 입에서 살살 녹는 빙수를 처음으로 대하는 설정에 있어 시청자들은 커피 문화와 설탕의 대량 유입이 시작되었고 전기가 들어와 냉동고가 설치되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가정상비약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정로환이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 병사들을 위한 배탈약으로 만들어졌고 그 이름조차도 러시아를 정벌하겠다는 정로(征露)가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그 한문 발음 그대로 바를 정(正) 글자만 바꾼 그 약이 한국인에게는 곧 지사제라고 인식되는 보통명사라는 판결이 난 1999년 이후 같은 브랜드명으로 이 약을 출시하는 제약회사가 8곳이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한 시절, 우리 식문화의 변천을 볼 때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지금은 일상적인 음식이 된 어묵이나 단팥 등이 등장하는 이 시기를 일본에 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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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음식에 관한 이야기뿐이랴. 산업화의 근간이 된 근대화를 논하려면 일제강점기를 빼 놓을 수 없지만 꼭 일본이 우리에게 `근대`라는 자비를 베풀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려 불편한 감정이 앞선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나는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일본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루고 스스로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를 개혁하며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느냐고.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를 보고 나라의 빗장을 스스로 굳게 잠갔던 조선의 기득 세력은 과연 누구와 무엇을 지키려고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냐고.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인 유신 개혁이 옆 나라에서 일어남을 지켜봤을 것이고 평등과 산업화라는 시대적 조류를 알고 있었음에도 조선의 기득 세력들은 자신들이 누려왔던 어떤 것도 먼저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빼앗긴 주권을 위해 목숨조차 내놓은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이 민초였다. 이 시절에 저지른 어떤 악행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이 미운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그 시대 두 나라 지도층이 어떤 선택을 했기에 지배와 식민의 역사로 갈리게 되었는가를 우리는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종전 선언을 앞두고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이때를 사는 우리는 망국의 불우한 시절을 살았던 구한말 선조들에 비해 `축복의 세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국 제일주의를 외치며 무기 없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 그들과 더불어 세계 3강 구도가 되어 젊은 기업인들로 세대교체를 이룬 일본 경제를 보며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연일 재벌 총수 가족들의 갑질과 뒷돈 받은 전 대통령들의 뉴스가 나오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대기업과 공무원 채용이 최선의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내어 놓은 세대라고 역사 속에서 평가될지 사뭇 궁금하다.

[한윤주 한식전문가(콩두 푸드&컬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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