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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데스크] 나쁜 글

  • 김인수 
  • 입력 : 2018.08.09 17:14:52   수정 :2018.08.09 17: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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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면을 담당하다 보니 여러 신문에서 칼럼을 읽는다. 필진 발굴을 위해 SNS나 블로그에서도 글을 찾아 읽는다. 때로는 좋은 글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어떤 글들을 읽을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반대편을 조롱하고 비웃는 글, 자기편이 옳다는 절대 확신에 찬 글을 보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진다.
진보와 보수, 세대 간 분열이 심해질수록 그런 글이 늘어만 가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럴 때면 나는 간혹 안타까운 마음에 종이를 펴고 삼각형을 그린다. 극단의 의견을 조율해 더 나은 의견을 찾아가는 `중용(中庸)의 도`가 삼각형에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린다고 해보자. 나는 삼각형 밑변의 한쪽 끝인 A에, 너는 다른 한쪽 끝인 B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너와 나의 거리는 매우 멀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의견을 조율해 삼각형의 마지막 남은 꼭짓점인 C로 나아간다고 해보자. C는 A와 B의 중간에 있지만, A나 B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너와 나는 원래 각자가 있었던 자리보다 훨씬 높은 곳, 즉 C에서 만나 합의점을 찾는 게 된다. 이런 게 바로 중용이다.

나는 종이에 그려진 삼각형을 바라보면서 나와 반대되는 `너`가 있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세상에 네가 없고 오로지 나만 존재한다면, 나는 계속해서 A에 머무를 것이다. B가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B를 탐색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있기에 나는 B를 탐색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성장해 C로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삶이란 이런 것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성장하고, 내가 있기에 네가 성장한다. 지금의 `나`가 있는 것도, 지금껏 내가 만난 수많은 `너`가 있기에 가능했다. `너`가 없으면 `정체된 나`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에 속한다는 이들이 쓴 글마저 `나와 다른 너의 존재`를 부인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중용의 미덕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글이 너무 흔하다. 게다가 그런 글의 공통점은 글쓴이의 자기 확신이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은 `일말`도 없다는 듯이 반대편의 생각을 도끼로 내려친다.

그런 글을 읽을 때면 나는 종이에 아주 작은 원을 그린다. 원의 크기는 앎의 크기다. 원이 작으면 앎도 작다. 원 바깥은 무지의 영역이다. 원이 작으면 원 둘레도 짧다. 당연히 무지와 만나는 접점의 길이도 짧아진다. 그렇기에 앎이 적은 사람, 다시 말해 작은 원을 가진 사람은 무지와 접할 기회가 적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모른다. 자기 확신에 빠져든다. 반면 앎이 큰 사람, 즉 큰 원을 가진 사람은 다르다. 무지와 만나는 원 둘레가 길다. 무지와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자기 무지를 더욱 깨닫게 된다. 자기 의견을 의심하고 회의하게 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은 참으로 옳다.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 역시 "우리 시대의 고통스러운 것들 중 하나는 자신감을 느끼는 사람은 어리석은 반면 상상력과 이해도를 갖춘 사람들은 스스로를 의심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오만한 글을 접할 때면 글쓴이의 앎이 빈약하다는 증거라고 읽는다. 타인의 의견을 조롱하는 글은 글쓴이의 자아가 정체돼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들이 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라 `나쁜 글`이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나쁜 글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다. 상대편을 조롱하는 글을 읽으면서 함께 키득댄다. 상대편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공격하는 글을 읽으며 자기 확신을 강화한다.
반대편 주장을 읽지 않고, 그런 나쁜 글을 읽는 사람들의 정신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생각을 표현하고 피드백을 받아 새롭게 배우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가 옳고 너희는 틀렸어`라는 자기편의 정신 승리가 목적인 글이 너무 많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知)의 빈곤`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

[김인수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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