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고집 센 사마리아인

  • 이진우 
  • 입력 : 2018.08.06 17:11:55   수정 :2018.08.06 17:34:18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492853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도와준다면서 뒤통수치는 게 더 화가 난다." "벽이랑 얘기한 것 같다." "회의·간담회는 뭐 하러 하나. 자기들 마음대로 할 거면서."

사마리아인은 고대 유대인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이용해 먹는 족속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달랐다.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남자를 당시 유대인 상류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 본 체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계산 없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맞비교하긴 뭣하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에서 영감을 받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본인 책에 붙인 제목이다. 장 교수는 신(新)자유주의 정책을 개발도상국에 주입하는 부자 나라들을 비판하는 의도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2007년 나온 이 책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여하튼 나쁜 사마리아인은 겉으로는 도와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남에게 해코지하는 위선적 존재로 그려진다.

한국 경제가 많이 어렵다. 고용, 생산, 투자, 주가 할 것 없이 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소비 심리는 시들하고 반도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출도 위태로워 보인다. 올 상반기 한국 경상수지는 전년 동기 대비 16.8% 감소했다. 더욱 꺼림칙한 건 속도다. 불과 1년여 만에 주요 지표들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글머리에 소개한 것처럼 요즘 기업인 중에는 현 정부에 질렸다는 사람이 많다. 이런 정부를 사마리아인에 비유해 보면 어떻게 될까. 착하다, 나쁘다 딱 잘라 말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점점 두드러지는 불통의 행태를 감안하면 `고집 센 사마리아인`쯤이 적당해 보인다. 별로 근거도 없어 보이는 자기 처방만 고집하는 사마리아인 말이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주요국 경제가 일제히 호황인 상황에서 한국의 `나 홀로 추락`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많은 이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경제 추락의 원인으로 꼽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핵심은 일단 지르고 보는 정책 모험주의와 경직적·획일적 정책 집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경제 정책 방향이 정권마다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쳇말로 대통령이 하겠다면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결정을 정책으로 소화하는 방식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궁리하면서 여건을 살핀다.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면 시기·속도를 조정하기도 한다. 집행 후라도 문제가 확인되면 재빨리 바로잡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 말미도 촉박할뿐더러 예외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탈원전 정책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대기업 규제 모두 마찬가지다. 덜컥 저질러 놓고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인상이 짙다. 담당 부처에선 `원칙대로!`만을 외친다. 정책 대상이 되는 입장에선 실험 대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청와대가 6일 부인했지만 경제부총리의 삼성전자 방문을 `구걸`과 동일시하는 시각이 있었다면 이 또한 경직적·획일적 기조와 무관치 않다.

융통성 없는 정책의 상대는 결국 시장이다. 자본주의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정부가 시장을 이겨낼 도리는 없다. 결국 이 정부는 번번이 세금을 쏟아 문제를 틀어막으려 한다. 무모(reckless)하다고 해야 할지, 무심(mindless)하다고 해야 할지.

원래 `착한 사마리아인`은 상처 입은 남자를 만나 응급처치만 해준 게 아니었다. 주막으로 옮겨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줬고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돌봐 주기를 부탁했다. 심지어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유연하면서도 치밀했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에선 이런 면모가 엿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경제 정책의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의 `고집 센 사마리아인` 노릇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실험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정부 스스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이진우 증권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