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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한미동맹 65주년 풍경

  • 노원명 
  • 입력 : 2018.08.01 17:16:54   수정 :2018.08.01 19: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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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한국 우파 진영에는 도널드 트럼프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이후 점증하는 회의론이다. 당장 김정은을 요절낼 것 같던 트럼프가 뜬구름 잡는 합의문에 서명하더니 그 후로도 스텝이 엉키고 있다. 회담 후 두 달이 돼 가도록 비핵화 시간표가 안 나온다.
트럼프는 오히려 "시간제한은 없다"며 물러섰다. 비핵화 코스 요리에서 식전 와인쯤 될 미군 유해 55구 송환을 받아들고는 생큐를 연발한다. `꿩 잡는 매`인 줄 알았는데 `닭 쫓던 개` 모양새다. 여전히 `한 방`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있다. 트럼프는 어찌 됐든 미국 대통령이고 그는 무역전쟁 카드로 `황제` 시진핑마저 질리게 만들었다. 중국을 묶어 놓으면 북한 지원을 대놓고 재개하지는 못할 것이고 김정은 정권은 고사하든가, 두 손 들든가 하리란 전망이다. 중간선거가 끝난 뒤 트럼프가 공세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미국 민주당과 주류 리버럴 언론들이 한목소리로 대북 저자세를 비난하는 중이다. `내가 잘못 봤다`고 인정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트럼프가 김정은을 상대로 일전을 벌이기에는 괜찮은 여건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신념형 인간이 못 된다는 거다. 지도자의 판단 기준이 장삿속이 되면 원칙이 희생될 위험은 커진다. 우파가 걱정하는 재앙적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비핵화 협상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는 선에서 적당히 봉합하고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로 내달리는 경우다. 종전선언은 김정은이 요구하고 남한 정부가 호응하며 여기에 중국이 가세했다. 북이 비핵화 일정에 성의를 보이면 미국은 받을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다 같이 원한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더 나아가 "한미동맹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상태"라며 "최선은 동맹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 의견을 전제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게 정부 방향인 경우가 많았다. 한미동맹에는 여러 변수가 있어 예단할 수 없으나 남·북·미 당사자들의 시각이 이렇게 일치한 것은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우파는 이걸 `대한민국 멸망 코스`로 보는 듯하다. 종전을 선언하고 남북 간에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그 자체로는 요식일 뿐이다. 북한은 그때도 김정은 1인 독재국가일 테고 사실상 핵 보유국 행세를 할 것이다. 비정상국가이자 핵무장 국가인 북한, 그 위에 버티고 앉은 거인 중국을 홀로서기로 상대한다는 것. 그게 한미동맹 해체 후 우리가 맞닥뜨릴 실존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우파의 걱정을 엄살로 볼 수 없다.

한편으로 어쩌면 그것이 국가 정상화로 가는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역설적 생각을 해본다. 1953년 8월 서울에서 가조인되고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조인된 한미동맹은 올해로 65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그 덕을 톡톡히 봤다. 한미동맹이 없었으면 체제 보존에 전념하느라 지금과 같은 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미동맹에 안주하는 사이 우리는 체제에 대한 치열함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가치를 위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우리가 비슷한 급으로 생각하거나 따라가려 하는 나라 중에서 우리처럼 공동체 가치가 희박한 나라는 없다. 우리는 `자유`라는 인류 보편 가치조차 생각을 달리해 헌법에서 빼느니 마느니 한다. 야당은 "제발 우리 대통령을 미국이 좀 말려줬으면" 하고 여당은 김정은보다 야당을 더 반민족적이라 여긴다. 노무현식 표현에 따르면 미국 바짓가랑이 잡고 `형님, 형님` 한 것이 우파다. 특이하게도 좌파 코드와 민족주의 코드를 결합한 한국 좌파는 남한 내 모순에는 눈을 부라리면서 반인류적 북한 독재에는 관대하다.
가치의 보편성이 안통한다.

이런 현상이 전부 한미동맹이 초래한 정신적 방종이라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정 부분은 그럴 것이다. 언젠가 한미동맹이 해체되고 홀로 서게 된다면 그때는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릴 상대도, 북을 낭만주의로 대할 여유도 없다. 그 엄혹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뭐가 참이고 뭐가 사이비인지 드러나지 않겠나. 새로운 정신이 서지 않겠나. 굳이 한미동맹 해체의 길로 가겠다면 그걸 막기도 어렵다. 새 생존방식을 모색할 수밖에.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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