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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기다리는 것은 사치가 아니고 투자다

  • 입력 : 2018.07.30 17:31:46   수정 :2018.07.30 17: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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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같은 분야에 있는 친한 지인과 있었던 일이다.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공유경제의 대명사인 우버와 리프트 리서치헤드로도 맹활약하는 그와 서로 학생 때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최고의 교수로 활동하는 그에게 하나 놀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 정도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궁금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니 그 답 또한 놀라웠다.
그 당시 젊은 혈기에 컨트리 뮤지션이 되기 위해 4년 정도 내슈빌에서 살면서 음악을 했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그를 생각할 때 그저 놀랍기만 했다. 실제로 미국 학계에서는 지금 연구하던 분야와 다른 분야에서 공부를 시작한 교수가 상당수 있다. 물리학을 전공한 경제학자,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학자, 공학을 전공한 경영학자가 많다. 시카고 경영대 학장을 역임한 수닐 쿠마 교수는 학사부터 박사과정까지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스탠퍼드 경영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이 됐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 대학이 교수를 뽑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대학에서 새 교수를 뽑을 때 중점을 두는 것은 현 교수진과 다른 분야를 연구하거나 같은 분야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본인을 포함해 지금 학교에 있는 교수 여러 명이 이런 방법으로 임용됐다. 이러한 이질적인 접목을 통해 새로운 분야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한 우물을 파라"는 옛말이 무색해진다.

이러한 예는 기업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를 찾을 때 많은 경우에는 내부 승진보다 다른 회사나 산업에 있는 사람을 초빙한다. 1년에 토이 블록 하나로 6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장난감 회사 레고그룹은 작년 새 CEO로 산업재 제조회사 경영자로 있던 닐스 크리스티안센을 선택했다. 8년 동안 주가를 20배 이상 성장시키며 미국 최고의 기업 회생을 완수한 도미노피자 CEO 패트릭 도일도 거버 이유식의 경영자가 배달 피자의 CEO로 성공을 거둔 경우다.

한국에서는 이른 나이에 청소년과 청년이 쉽게 되돌리기 힘든 선택을 한 후에 직진을 해야 한다. 지금은 다행히도 통합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 문·이과 선택에서부터 직진이 시작돼 대학·성인 때까지 이어진다. 대학 입학 때도 이미 전공을 정해서 들어가야 하고 재학 중 전과의 문은 그다지 넓지 않다. 취업이나 이직 때도 동일 전공이나 동일 분야 경력이 우선시 된다.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 지금 당장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능력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비슷한 스펙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살아남고, 다른 분야나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자리는 없다. 다른 곳을 보거나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란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성이 맞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 만일 그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달을 때 새로 시작하거나 다른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여유가 우리에게는 있는가.

최근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융합과 혁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같은 문제를 같은 시각으로 보는 사람만 모인 집단에서 아주 새로운 것이 나올 확률은 낮다.
융합의 근본은 다양성(diversity)이고 다양성의 기본은 나와 다른 사람들인 것이다. 다른 시각과 인생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집단에서 함께 일할 때 융합을 기대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중요한 분야일수록 빨리 한 우물을 파서 온 사람들뿐 아니라 올레길로 멀리 돌아서 온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돌아온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결과를 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회적 여유가 있으면 어떨까. 학생들에게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여유를 조금만 주자. 기업에서도 현업만 빨리를 강요하지 말고 젊은 사원에게 다른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여유를 조금만 주자. 이런 여유는 사치가 아니라 미래에 큰 수확을 누릴 수 있는 통 큰 투자다.

[안현수 미시간대학교 경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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