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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포용적 성장' 유감

  • 정혁훈 
  • 입력 : 2018.07.30 17:27:18   수정 :2018.07.30 17: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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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성장`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유럽에서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성장이론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도록 분배를 강화해 고루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역임한 윤종원 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오면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윤 수석은 대사 시절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 왔다. 청와대는 윤 수석과 포용적 성장을 내세우면서 두 가지 효과를 노린 듯하다. 하나는 청와대 정책팀의 위상 강화이며, 다른 하나는 소득주도성장 구하기다.

청와대 정책팀은 정통 관료 출신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교수 출신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위상이 많이 약화됐다. 유일한 정책 브랜드인 소득주도성장이 최저임금 인상의 역풍으로 힘을 잃으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점잖은 학자풍 면모를 지닌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관료들을 상대로 정책을 리드하기엔 아무래도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 그에 비해 윤 수석은 정책통으로 야전에서 잔뼈가 굵었다. 더구나 업무 스타일 자체가 `그립`이 강한 데다 `잠룡(경제부총리 후보군)`에 속하는 만큼 정부 관료들이 알아서 맞출 테니 걱정할 것이 없다.

청와대는 또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적 프레임을 피해 가기 위한 수단으로 포용적 성장을 활용하는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은 그 원류가 국제노동기구(ILO) 중심으로 연구되던 임금주도성장이었다. 이 표현을 그대로 쓰기엔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워낙 높아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바로 소득주도성장이었다. 경제학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성장이 양극화 해소의 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소득주도성장이 실패로 낙인찍힌 것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인상`이라는 프레임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타이밍과 속도를 맞추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타이밍으로 보면 사실 자영업 위기는 이 정부에서 최저임금을 올린 탓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과당 경쟁 등 오래전부터 누적돼 온 구조적 문제가 더 큰 원인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이 타오르는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은 분명하니 청와대와 정부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항변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정책 타이밍을 잘못 선택한 죄로 모든 책임을 최저임금이 떠안은 꼴이 돼버렸다. 만일 자영업 대책을 먼저 내놓는 성의를 보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다.

속도도 마찬가지다. 거위 깃털 뽑듯이 티 안 나게 올려도 적응하기 어려운 판에 2년간 29%라는 인상률은 털이 뽑히는 입장에서 보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남의 주머니 돈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심이 들 수밖에 없다. 높은 지지율에 취한 과욕이 부른 참사라고 할 만하다.

포용적 성장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아우르는 상위개념이라고 소개했고, 윤 수석은 성장의 혜택이 사회 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는 성장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에 포용적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긴 했지만 정책적으로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여론이 다소 혼란스러워하자 청와대는 참고자료를 통해 문 대통령이 지난 1년간 연설에서 포용적 성장이라는 표현을 6차례 사용했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결국 포용적 성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이 정부의 새로운 정책 브랜드로 등장했지만 내용은 이전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지난 1년여간 청와대와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름을 바꿔서라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수석이 하루아침에 물러났을 정도면 뭐가 문제였는지 진지하게 반성해 볼 만도 하지만 그런 겸손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리는 때가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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