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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데스크] 7월의 낭보

  • 노영우 
  • 입력 : 2018.07.29 17:17:06   수정 :2018.07.29 18: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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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벽했다. 캄캄한 동굴에 조난당한 그들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25세 엑까뽄 찬따웡 코치는 리더로서 먹을 것을 양보했고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다독였다. 동굴에선 고인 물을 먹지 말고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을 먹어야 한다는 과학적 상식도 있었다.
10대 축구부원 12명은 코치 말을 정확히 따랐다. 서로의 눈을 보며 격려했고 함께 살 것을 다짐했다. 동굴 밖에는 나롱싹 오솟따나꼰 전 치앙라이 주지사가 있었다. 그는 항상 현장을 지키며 상황을 정확히 알렸고 구조작업에 방해가 되는 언론의 과도한 관심은 통제했다. 소식을 듣고 세계적인 구조 전문가도 몰려들었다. 기술이 있는 사람은 기술을 내놨고 장비가 있는 사람은 장비를 내놨다. 구조에 동참하지 못한 수많은 세계인들은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 결과 13명의 아이들과 코치는 동굴에 갇힌 지 17일 만에 모두 구조됐다. 세상 사람들은 `동굴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한 결과였다. 신이 내린 기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업적이었다.

아이들을 돌본 코치는 동남아 소수민족 출신 무국적 난민이었다. 축구부원도 `엄마한테 혼날 것을 두려워한` 평범한 소년들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성과 감성으로도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어쩌면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상식을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공감이 발휘된다면 제법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지구촌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의 리더들이 그렇다. 그들은 인간의 상식보다는 아집, 공감보다는 이기심으로 온갖 권모술수를 앞세워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돈으로 군대로 독설로 서로를 위협하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인본주의(휴머니즘)` 철학을 꽃피웠던 유럽에서는 각국이 `난민 쫓아내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동 시리아에서는 내전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되고 있다. 하느님의 적자를 자처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지대에서는 연일 포격과 총성이 난무한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념과 계급으로 갈기갈기 나뉜 집단들이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서로를 몰아세우고 상처 내기에 여념이 없다.

집단을 만들어 상대를 굴복시켜야 자신들이 잘살 수 있다고 믿는 세력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상대를 제압하면 승리한 세력 내부에서 또 적을 만들고 싸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싸우는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뿐이다. 연못 속의 두 마리 물고기가 서로 싸워 한 마리가 죽으면 그로 인해 물이 썩고 결국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됐다는 노래 가사와 비슷한 상황이 역사적으로도 반복됐다.

만약 13명의 태국 소년과 코치가 동굴에서 서로 편을 갈라 싸웠다면 어찌 됐을까. 소년들이 리더인 코치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더라면 어찌 됐을까. 코치가 우리나라 세월호의 선장처럼 자기 먼저 살겠다고 발버둥 쳤더라면 어찌 됐을까. 언론의 취재 경쟁으로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정부가 생색내기에 급급했다면 등등.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상황은 비극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정확히 알았고 그 방법을 그대로 실천한 그들을 보면서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7월 태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분명 `최고의 낭보(朗報)`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생각을 태국 오지 동굴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서만 느껴야 할까.

우리 주변엔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있고 더 현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태국 동굴 현장에서 사람들이 보여줬던 삶의 지혜를 목격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돈, 권력, 지식을 더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태국에서 들려온 낭보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영우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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