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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금강산관광 2.0

  • 장박원 
  • 입력 : 2018.07.23 17:46:37   수정 :2018.07.23 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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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1일 새벽 4시 30분 박왕자 씨는 눈을 떴다. 금강산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산책하고 싶었다. 숙소인 비치호텔을 나왔을 때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스름했다. 해수욕장 주변을 걷다가 장마로 무너진 펜스를 넘었다.
얼마 후 어디선가 `정지`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넘지 말아야 할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포가 몰려와 무작정 왔던 방향으로 뛰었다. 곧 총성 두 발이 이어졌고 박씨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이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은 10년째 중단됐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남북 경제협력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금강산관광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업가정신과 꿈, 인내와 노력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1998년 6월 16일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하면서 그해 11월 금강산관광이 성사됐지만 사업을 타진한 것은 10년 전인 1989년이었다. 금강산관광 초기에는 시설이 미비해 불편이 많았다. 숙소가 마땅치 않아 배에서 잠을 잤고 밖에서 도시락으로 때우며 관광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비도 비싼 편이었다. 그럼에도 금강산을 가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2003년 육로가 뚫렸고 시설이 갖춰지며 관광객은 급속히 늘었다. 사업을 맡았던 현대그룹에 따르면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금강산을 다녀간 사람은 총 195만5951명에 달했다. 남북 교류에 관심이 있었던 정치인과 관료, 학자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이 금강산을 보았다.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국내 관광지 목록에는 금강산이 꼭 포함됐다.

금강산관광은 남북 경협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강산이 열린 뒤 개성공단이 가동에 들어갔고, 2007년에는 개성관광도 시작됐다. 하지만 금강산관광은 남북 경협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외교·안보 등 정치 문제에서 독립되지 않은 남북 경협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현대아산은 관광 대가로 북한에 5597억원을 지급했고 부두와 호텔 등을 짓는 데 2197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한순간에 사업이 멈췄고 이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며 1조5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2016년 폐쇄된 개성공단의 피해는 훨씬 더 크다. 생산시설과 재고를 두고 온 입주업체들이 겪고 있는 고충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 화해 무드에 편승해 졸속으로 이뤄지는 경협은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치는 열정으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경제는 열정으로 망할 수 있다. 금강산관광 중단 사태와 그 이후 벌어진 일은 이중삼중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에 남북 경협에 나서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했을 뿐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이행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국제사회도 제재를 풀지 않는 것이다. 우리도 경협 재개를 논의하고 준비할 수는 있지만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현대그룹은 `4·27 판문점선언` 직후 `남북경협사업 TFT`를 결성했다. 남북관계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며 오랜 기간 경협을 준비했던 만큼 이번엔 꼭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음달 4일 고 정몽헌 회장 15주기 추모식을 금강산에서 개최하기 위해 통일부에서 대북 민간 접촉 승인을 받았고, 현재 북한과 협의하고 있다. 다음달 20~26일에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다. 이런 분위기라면 대북 제재가 풀리자마자 바로 금강산관광이 재개되고 개성공단도 가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기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단되지 않을 환경을 조성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고려나 민족 감정을 배제하고 제3자의 눈으로 북한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 기업과 자본이라면 과연 북한에 투자할지 묻는 것은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금강산관광 2.0, 더 나아가 남북 경협 2.0이 성공하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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