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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필의 인생 낚시터] 영혼이 흔들려야 교육이 시작된다

  • 입력 : 2018.07.18 17:04:32   수정 :2018.07.19 10: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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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50명 서울 공기업 퇴직 예정자분들의 표정이 묘하다. 굳이 해석하자면 `그래 50+인생학교가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런데, 뭐? 어쩌라고?` 하는 것 같다. 몇 년 동안 강의하면서 정말 처음 겪는 낯선 상황이다. 다음날까지도 자꾸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에 인생학교의 이모저모를 인상 깊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참여자가 중심이 되는 워크숍 방식, 기존의 관성을 깨기 위해 서로 명함이나 주민등록증을 내밀지 않으면서 별칭으로 부르기, 머리보다는 마음에 다가가려는 감성적 접근, `3개월의 기간 동안 잘하려 하지 말고, 마음껏 저지르고, 개겨 보자` 등 나름 깔끔하게 정리해서 설명을 했다. 한데 몇몇 분들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고 대부분은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를 듣듯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사돈 남 말 하듯 정작 내가 명강사들이 흔히 하는 방식으로 혼자 떠들고 있었다. 결국은 인생학교 자랑질이었으니 듣는 이들 영혼에 닿을 리 있겠는가?

강의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강사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무엇을 느꼈고,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10년 넘게 교사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이 점을 늘 강조하던 내가 정작 헛짓을 했으니, 무슨 말을 하랴.

지난 봄 50+인생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할 때 내 모습을 떠올린다. 첫 수업을 어떻게 할까 여러 날 고민하던 끝에, 우리나라 멜로 영화의 고전인 `건축학개론`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어떤 발문으로 시작하는가? 영화를 본 후 첫 번째로 던진 질문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무엇인가?`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여러 번 이 영화를 보았지만 볼 때마다 안타까운 장면이 다르다. 이번에는 여주인공 서연이 제주도 집을 거의 다 짓고, 첫사랑 승민과도 마음을 서로 확인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보는 장면이다. 새로 지은 거실과 안방을 설명하다가 예상치 못한 승민의 사진이 불쑥 등장한다. 아빠는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데 답을 못하다가 "그냥 친구"라고 하면서 울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첫사랑 승민은 약혼자와 미국으로 떠나야 하고, 서로 사랑하지만 내놓고 말할 수 없는 그 복잡한 심정이 담긴 말! 그런데 나는 왜 이 장면이 굳이 안타까울까? 아마도 40년 전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군대로 끌려가기 전 첫사랑과 헤어지던 장면을 연상했으리라.

이렇게 내가 먼저 말문을 열자 참여자분들이 자연스럽게 중심이 된다. `건축학개론`이 갖는 마력은 모두의 소중한 추억 중 어느 부분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안타까웠던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소환된 각자의 추억을 진솔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한 자락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모두가 스무 살 시절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그 공간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된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다 보니 단단한 껍질을 여러 겹 두른 50대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도 잊고 있었던 내면의 아픔을 꺼낼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감성적 접근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으리라. 그렇게 영혼이 흔들리면, 그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내기 위해 그만큼 움직이기 시작한다.

50+인생학교가 시작한 지 이제 2년 반이 되었다. 3개의 캠퍼스에서 9기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졸업생들을 볼 때마다 매 수업에서 했던 깊은 영혼이 담긴 그분들의 말과 표정, 그 무엇보다 그분의 `마음`이 떠오른다.
이우학교 때를 돌아봐도 그렇다. 아이들은 더 그렇다.

영혼을 흔들지 못한 강의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다짐한다. 짧은 시간을 핑계대지 말자. 내용이 중요하지만 듣는 이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죽이자!

[정광필 50+인생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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