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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당신과 함께한 기억의 파편들

  • 입력 : 2018.01.19 15:48:23   수정 :2018.01.19 20: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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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버린, 그러고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누군가를 애잔하게 기억하면서 그리운 상념에 때론 빠지곤 한다. 그와 함께했던 삶의 조각들을 또 다른 공유자들과의 회상으로 이어 맞추다 보면 내 기억이 남다르다거나, 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장면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간혹 이들 각자 상반된 기억은 미묘한 뉘앙스 차이로는 도저히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연유로 인해 서로 조화시키기 어려운 교착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은 의식하지 못한 기억의 오염과 왜곡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거짓말 탓일 수도 있겠다.
시시때때로 교정이 필요한 기억 오류.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극적인 반전은 단조로운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존재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맨부커 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는 이런 맥락에서 한 번쯤 읽어봄 직하다. 변화무쌍한 기억의 롤러코스터 타기를 짓궂은 호기심으로 즐길 요량이라면 분명 이 소설은 일상의 권태로움을 잠시 잊게 한다. 혹 소설 읽기가 따분하다고 여긴다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필자는 `삶과 기억`을 화두로 삼아 배우고 가르치고, 또 법률 실무가로서 생업의 재료로 삼아 왔다. 변덕스러운 인생만사 기억과 감성의 출렁임이 어찌하여 법적 분쟁을 만들고 또 그 속에서 평화를 찾을 것인가를 궁리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기억으로 복잡하게 어지럽혀진 아수라장(阿修羅場) 진흙 속에서도 운이 좋다면, 때론 비장미를 갖춘 솔루션을 얻기도 한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시인은 미묘하게 교차하는 기억들 사이의 뉘앙스를 언어적 감수성으로 조련한 시를 쓸 것이고, 사진가는 순간의 포착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해주는 대표적 기억의 프레임을 렌즈에 담아 보여줄 것이다. 역사가는 혼미하게 축적돼 자라난 저마다의 기억들 뿌리를 찾아내는 통찰의 역사를 쓸 것이고, 정치가는 광장의 귀퉁이마다 요란한 기억의 소용돌이를 정리해 균형의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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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제33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알프레드 P 슬로안 상을 받았던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Marjorie Prime)`에는 인공지능, 홀로그램이 등장한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SF물과는 맥을 달리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간, 그것도 인간 기억의 애잔한 복잡성`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에는 참으로 많은 대화들이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귀를 확 열어놓는 대사가 있다. `사람이 인공지능과 다른 점은 바로 예측 불가능함에 있다.`

그렇다. 우리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자 한 것은 인간의 불합리한 변덕스러움,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통해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리라.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이것을 인간의 한계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영화에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일 뿐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들에게 우리의 조각난 기억을 주입하는 인간적 코딩작업을 해주지 못하면 그들 존재만으로는 삶의 비장한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영화 같은 것은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다는 말이다.

법적 분쟁은 사람들의 기억이 충돌하는 가장 치열한 영역 중 하나다. 운이 좋다면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에서도 장인정신으로 빚어놓은 탁월한 걸작이 예외적으로 나올 수 있다. 인간의 나약함과 외로움을 애틋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통찰과 지혜의 소산 말이다. 때론 틀을 깨는 파격도 좋을 법하다.
이 때문에 누가 하는 재판인가는 여전히 중요하다. 장인정신의 대가(大家)를 만난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고 하는 재판일진대 기계가 하는 재판처럼 형식에 치우친 죽은 재판을 보기는 정말 싫다. 인간미 있는 좋은 재판의 모습을 보고 싶은 이 시대의 욕구가 여기에 있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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