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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확률적 세상

  • 입력 : 2018.07.11 17:18:57   수정 :2018.07.12 1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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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100% 확실한 것은 드물다. 대중은 과학이 치열하게 엄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부분 과학과 공학은 어림셈이다.

독감백신을 접종 안 하고 독감에 안 걸린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접종한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내가 접종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어림셈을 해보자. 1000명의 독감 환자로 시작해본다. 한 사람이 독감에 전염된 이후 전염성이 높은 첫째 주에 평균 10명, 둘째 주에 평균 3명씩 전염시킨다 하자. 5주까지 기세가 계속되면 계산상으로는 8200만명이 되어 전 국민이 걸리는 수준이다. 만일 30% 인구가 예방접종을 하면 5주 후 880만명 정도가 독감에 걸린다. 전 국민의 18% 정도다. 50%의 인구가 접종한다면 5주 후 100만명이 독감에 걸리고 이것은 전 국민의 2% 정도다. 60%가 접종을 한다면 5주 후 24만명이 독감에 걸린다. 겨우 전 국민의 0.5% 정도다. 이런 어림셈이 정확할 리는 없겠지만 접종 네트워크가 전염병을 막는 수리적 구조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독감백신 접종률은 44% 정도 되고 해마다 전 국민의 5~10% 정도가 독감에 걸린다. 접종률을 10%만 더 높일 수 있으면 독감은 극적으로 개선된다. 반대로 접종률이 10% 낮아지면 재앙 수준의 유행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서 모든 종목의 주간 주가를 오랜 기간 분석해보니 오른 경우는 46%, 내린 경우는 51%였다. 내릴 확률이 오를 확률보다 크지만 많이 오른 경우의 무게가 많이 내린 경우보다 무겁기 때문에 평균을 내면 0.31% 올랐다. 어떤 주식 투자 알고리즘은 9년간 코스피가 100% 채 오르지 못하는 동안 500% 이상의 수익을 냈다. 이 정도면 항상 시장보다 잘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월 수익률로 보면 열 달 중 네 달꼴로 코스피보다 못했다. 워런 버핏은 50여 년간 S&P500이 연평균 10% 상승하는 동안 연평균 24%라는 경이적 수익을 냈다. 그 과정에서 버핏도 3년 중 1년은 지수보다 못했다. 심지어 지수보다 40%포인트 못한 해도 있다. 이런 확률적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시장을 크게 압도한 투자법을 사용해도 오히려 손해를 본다. 주식 시장은 확률적 우위에 몸을 맡기고 시간의 횡포를 견디는 곳이다.

인공지능(AI) 열풍이 거세다. 실수 없는 완벽한 AI가 조만간 등장할 것처럼 떠든다. 대부분 AI는 어림셈이다. 확률적인 에러를 안고 수행된다. 이런 측면을 무시하면 사고를 한 번 냈다고 자동주행 실험이 전면 중단된다거나 AI닥터가 한 번 오진을 했다고 쓸모없다고 하는 순진한 결과를 낳는다. 어림셈으로 어떻게 써먹느냐고? 인간을 생각해보자. 우리들 판단과 일상이 대부분 어림셈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프로들을 두 점 차 이상 앞선 알파고도 방대한 가능성의 공간 중 쥐꼬리만큼만 보고는 확률적 어림셈을 한다.

돈을 빌린 사람이 대출 인터뷰 때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채무 이행 확률이 다르다고 한다. 컬럼비아대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하나님` `약속` `병원` 등의 단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돈을 안 갚는 비율이 높았다. 반면 `부채 없는` `졸업` `저금리` 등의 단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돈을 갚는 비율이 높았다. 앞으로 금융기관에서 이런 모델을 많이 만든 다음 이들을 중첩시켜 신뢰도를 확률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일상화될 것이다. 기업에서는 지원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어휘와 문장을 보고 어울리는 인재상을 확률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런 판단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과 이득을 보는 사람이 생겨 논란이 일겠지만 결국에는 확률적 관행이 정착될 것이다.


우리나라 50대 남성은 한 해에 100명당 0.5명 정도 사망한다. 70대 남성은 3.3명 정도 사망한다. 50대 남성이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면 99.5%에 속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고, 70대 남성은 96.7%에 속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는 운 좋게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옵투스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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