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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보물 찾기

  • 입력 : 2018.07.11 17:11:46   수정 :2018.07.11 19: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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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소풍 갔을 때 보물찾기를 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시작"이라고 외치고 나면 얼마 후 여기저기서 "찾았다!"는 함성이 터져 나오던 그때가 그립다. 바위틈과 수풀 사이에서 흰색 쪽지로 된 보물을 찾았을 때 참으로 기뻤다.

인사혁신처는 인재라는 보물을 늘 찾고 있다.
공정한 절차로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노력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 수나라에서 발전되어 고려 광종 때 도입된 과거제도는 일종의 공개경쟁채용시험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채용 방식이며 서양의 제도보다 확실히 앞선 것이었다. 과거제도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보다 체계적인 채용제도로 정착하게 되는데, 조선의 과거제도와 현대의 채용제도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시대 과거 응시자들은 답안지 우측에 본인과 부·조·증조·외조 인적 사항을 기재하였으며(피봉제도), 피봉 후에는 답안지를 봉인하여 누구 답안지인지 알 수 없게 하였다. 또한 채점자가 답안지 필체로 응시자가 누구인지 추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답안지를 필사한 후 필사본으로 채점하도록 하였다. 앞의 제도를 봉미법, 뒤의 제도를 역서법이라 하는데, 고려시대 처음 시행된 두 제도는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시험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로 보면 일종의 배경 블라인드 채용제도인 셈이다.

공정한 제도 발전을 위한 고민은 `시(험)관제도`에서도 드러난다. 고려시대에 시험을 주관하는 좌주와 응시자인 문생 사이에 부정한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폐단이 나타나자 조선 왕조는 시관 숫자를 늘리고 역할을 분산시켜 시관과 응시자 간 사적 관계 형성을 억제하였다. 즉 시험을 총괄하는 고시관, 시험 부정을 적발하는 감시관, 시험을 운영하는 차비관으로 구분하며 시관을 늘렸고 고시관은 임금이 임명하였다.
또한 고시관과 친인척 관계인 응시자가 있을 때는 시험장을 분리시켰다.

이렇듯 우수한 인재를 공정하게 채용하려는 노력은 예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정부는 공채 외에 경력자 채용(경채)에서도 외부 시험위원 참여 확대 등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시행하고 있다. 공정한 선발 과정을 통해 채용된 보물 같은 인재들이 공사 부문 각자 자리에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김판석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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