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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착한 사람 달문

  • 입력 : 2018.07.06 17:34:45   수정 :2018.07.06 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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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세책방. 큰 바람이 불어 지붕이 통째로 날아간 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서책들이 순식간에 물에 젖는다. 망연한 주인은 밖으로 나가 이웃을 불러댄다. 세상 인심,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켜졌던 등불마저 꺼지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
영감은 어쩌지 못하고 절망에 주저앉아 펑펑 운다. 갑자기, 거지들이 들이닥친다. 수표교 아래 거지 대장 달문이 이끄는 무리다. 기적이 일어난다. 달려들어 서책을 손에 들고 등에 져 일일이 옮긴다. 평소에 식은 밥 한 덩이 준 적 없이 문간에서 내쫓던 이들이다. 주인 영감은 궁금하다. 이들은 왜 나를 도왔을까? 박대를 어떻게 환대로 갚았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했을 겁니다." 달문이 시원스레 답한다. 아아, 하지만, 누구나 안다. "사람이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 놈들이 더 많다는 것을." 남의 집 세간이 빗물에 떠내려가도 제 몸에 닿는 한 방울 비가 싫은 법이고, 제 집 광에서는 곡식이 썩더라도 전쟁에 시달리고 가난에 쫓겨 찾아온 난민들에게 내어줄 빵 한 조각이 아깝다는 것을. 김탁환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북스피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설에 따르면, 달문(達文)은 조선 최고의 예인. 타고난 광대로 놀음을 보려면 고관대작들도 줄서야 했으되 가난한 이들 곁에서 평생 춤추고 노래했다. 실존 인물이다. 달리 광문(廣文)이라고도 하는데, 박지원, 이옥, 조수삼 등 당대의 문장가들이 다투어 그의 삶을 기렸다. 머리가 하얀데도 총각처럼 머리를 뒤로 땋고 온통 기운 옷을 입고 다니다, 거동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체포돼 영조의 국문을 받은 적도 있다.

기록은 달문을 `조선에서 가장 착한 사람`으로 전한다. 의협을 숭상하고 신의를 지켰으며 물욕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밤이면 상점 주인들은 그를 불러 숙직을 부탁하고 여관 주인들은 그의 품에 귀한 물건을 맡겼다. 팔도의 큰 장사치들과 두루 통해 세상 돈의 흐름을 꿰뚫어 보았으되 몸은 거지 무리를 떠나지 않았다.
셈이 약해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나 써야 할 곳에는 아낌없이 재물을 베풀어 하늘이 있음을 널리 알렸고, 제 이름자도 쓸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으나 어떠한 일에서도 오로지 사람답게 행동했다.

큰돈을 주무르는 이들이 작은 돈을 탐해 김밥집 하고 커피숍 내고 제과점 차려 서민들 생계를 노리는 세상이다. 심지어 법망을 피해 약국을 열고 뒷돈을 챙기다 발각되기도 했다. 정녕 몸서리쳐지는 짐승과 악당의 세상이어서일까. 이 아침, 이름대로 살아간 착한 사람 달문이 더욱더 그립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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