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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연꽃잎에 담긴 君子의 풍모

  • 입력 : 2018.07.06 17:31:35   수정 :2018.07.06 18: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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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꽃들이 절기에 맞추던 순서를 잃고 한번에 피고 지는 바람에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지만 옛사람들은 한 해 내내 피고 지는 꽃을 즐길 수 있었다. 이른 봄에 피는 눈 속 매화부터 한창 봄의 모란을 거쳐 늦가을을 꾸며주는 국화까지, 꽃의 이어달리기를 구경하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속성을 사람 사는 세상까지 이끌어 오기도 했다. 매화를 절의를 지키는 선비에, 모란을 꽃 중의 왕에 비유했고 국화는 은자에 빗대기도 했다. 그러나 옛날 지성들이 지향했던 전인(全人), `군자(君子)`는 연꽃이 차지했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이도 없었다.
`멀리 있을수록 더 맑은 향기`를 지닌, 군자의 꽃, 연꽃이 피는 계절이 됐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는 세상에 둘도 없을 귀한 연꽃이 있다. 연꽃잎을 곱게 말리고 그 위에 당나라 시대 나은(羅隱)이라는 시인이 지은 시 두 구절을 적어 넣은 `작품`이다. 꽃잎의 세로가 8㎝, 폭이 4㎝ 남짓인데, 이 좁은 공간에 흘려 행서와 초서를 섞어 조그맣게 썼다.

적힌 시의 내용은 이렇다.

"작약은 임금 곁에서 모시고 섰는데, 부용은 그 진한 향기를 피해 어디에 있을까?"

원래 이 시는 꽃의 왕, `모란`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방점은 `부용(芙蓉)`에 찍힌다. 부용은 연꽃의 별칭이므로, 다시 읽으면 여느 꽃들과 달리 권력의 향기에 취하지 않은 연꽃을 읊는 내용이다. 그리고 나은의 시와 따로 한마디를 보탰는데, "비록 시리도록 가냘프지만, 나는 부용(연꽃)이 모란에 못지않다고 여기네"라고 썼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조선 영조시대, 명망이 높았던 선비 김상숙(金相肅, 1717~1792)이다. 그는 당대 선비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물로, 조선 후기의 은일지사(隱逸之士)로 꼽힌다. 글씨에도 아주 뛰어나 18세기 후반에 세워진, 어지간한 명망가와 고승의 비석들이 그의 솜씨 덕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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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은 글씨를 특히 중요하게 여겼다. 흔히 사람들은 글씨를 배울 때 큰 글씨부터 시작하지만, 그렇게 하기보다 작은 글씨에서 시작해야 옳다고 여겼다. 그는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자라고 소멸하는 것이 생명의 원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상만사, 만물의 시초는 `작음`이니 커다란 일은 그 시작을 소홀하게 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음까지도 미루어 이야기했다.

이 주장대로 그는 행동거지에서 사소한 일부터 조심하고, 터럭같이 작은 것이라도 욕심을 내지 않았다. 평생 소학(小學)과 노장(老莊)을 읽으면서 검소함과 절약을 실천했는데, 글씨를 많이 쓰면서 필요한 붓을 스스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꼬장꼬장한 딸깍발이와는 거리가 멀어서 오고 감이 자연스러웠고, 흥취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흥이 일면 그 자리에서 종이를 펼치고 붓을 꺼내 여남은 장을 채우고 가던 길을 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런 인물에게 부귀며 영광이 유혹거리가 될 리 없었다. 그의 가문은 조선 유학의 거두 김장생(金長生)을 배출한 후 대대로 영광을 누렸고, 맏형 김상복(金相福)도 영조의 총애를 받은 재상이었다.
비록 노론과 소론이 대립으로 인한 고난도 겪었지만 김상숙의 여유로움은 그와 상관없이 평생 유지됐다.

우리는 그의 넉넉함이 풍요나 명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조 시절에 이름을 떨친 문인 성대중(成大中)이 "담담하고 청정하며, 다가오되 매임이 없고 멀어지면 미련을 두지 않아, 넉넉하고 시원하며 가까운 듯하나 멀리 있다"고 하며 그의 글씨를 칭송했던 것은 그 넉넉한 성격과 인품을 가리켜 일컬은 바다.

연못 가득 핀 연꽃을 구경하며 우리가 맡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냄새야 흩어지면 그만이지만, 매임도 미련도 없고 넉넉하고 시원한 품격의 향은 누구나 흠모하고 그리워할 바이니,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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