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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3김정치와 카리스마적 권위

  • 입력 : 2018.07.05 17:32:26   수정 :2018.07.05 17: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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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던 `3김 정치`란 시대어가 다시 회자됐다. 지난달 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타계했을 때다. 모든 언론이 3김 정치를 언급했다. 이제 비로소 그 마지막 인물과 함께 퇴장하게 된 3김 정치란 용어는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으며 역사성을 가질까. 역사 속의 정치적 세대로 완전 편입된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정치 활동을 지칭하는 3김 정치의 궤적은 상당히 넓은 것이 사실이다.
3김이 정치적 연대처럼 묶인 것은 본래 전두환·노태우 정권에 대항하는 공동행동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김영삼·김대중의 양김 연합전선에 김종필이 가담하지 못했다.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 1인 체제가 무너진 후 그 이듬해 이른바 `서울의 봄`에서 3김 정치의 첫 시동이 이뤄졌다. 양김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일관되게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는 역경의 길을 걸었고, 김종필은 10·26사건 이후 전두환 정권의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 3김의 움직임이 민주 회복을 상징하는 정치 활동으로 비친 것이다. 세계 언론들은 1968년 오랜 공산독재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화 운동인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빗대 `서울의 봄`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5·18 광주민주항쟁의 비극과 함께 불과 몇 달 만에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3김이 정치 전면에 다시 등판한 것은 1987년 6·10 시민항쟁이 승리한 덕택이었다. 각기 정당을 조직하고 그해 12월 대통령 직접선거에 출마했으나 역사적 물줄기를 바꾸기 위한 공동행동과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노태우 6공정권의 수립을 쿠데타 정권의 연장이라고 보고 그 책임론이 특히 양김에 쏠리기도 했다. 이후 3김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5공 청산을 주도했으나 1990년 1월 김영삼이 의외로 김종필과 함께 노태우 정권과 3당 통합을 이루면서 갈라졌다.

광복 후 한국 정치사를 정치적 세대라는 틀로 분석해 정리하면 3김은 3세대 정당정치를 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당정치 1세대는 이승만 김구 신익희 조병옥 장면 등으로 각기의 헌신에 대한 평가에는 차이가 있지만 항일 독립운동 세대로 명명할 수 있다. 신생국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전형인 카리스마적 권위를 갖고 정치무대에 나섰다. 이들이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 한국 정치를 이끌었다.

2세대 정당정치의 주도자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씨로 군사쿠데타 세대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후진국 정치의 속언을 실천에 옮긴 정치군인들이다. 총구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공포의 카리스마를 이용해 민주적 정통성의 취약점을 은폐하면서 권위주의 통치를 강행했다.

이런 군사쿠데타 세대에 대항하고 극복하면서 등장한 3김이 그다음 3세대 정당정치의 주역이다. 민주화 투쟁 세대로서 많은 고초를 겪으며 민주정치 발전에 공헌했고 각기 집권에도 성공했다. 김종필은 5·16 군사쿠데타의 주모자였지만 김대중과 손잡고 DJP 연합정권을 세워 2세대 정치에서 3세대로 옮겨 앉았다. 그러나 민주화의 주역인 이들도 카리스마적 권위를 구사했다. 사형선고와 목숨 건 단식투쟁 등 반독재 투쟁의 역경에서 파생된 카리스마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3김의 황제적 정당권력이 비판받기도 했다. 정당의 3대 권력이라 할 공직선거 공천권, 재정 운용권, 당직 인사권 등을 당 총재가 독점적으로 지배함으로써 실질적 내부 민주화는 권위주의 정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3김의 3세대 정당정치 이후 4세대 정치는 과연 태동했는가. 1·2·3세대 정치지도자와 정당 문화가 세대별로 성격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카리스마적 권위라는 외투를 입었다. 향후 4세대 정치는 그 외투를 벗겨내는 리더십으로 채색돼야 한다. 탈권위와 소통, 인권과 평화, 복지와 상생이라는 민주적 가치가 바로 4세대 정치 리더십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이제는 시민사회, 기업, 노조, 대학 등 중간집단의 성숙한 폴로어십이 정치 리더십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 발전의 견인차가 돼야 할 것이다.

[김재홍 서울디지털대 총장·공익사단법인 정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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