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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김정은 앞에 있는 건 외길이다

  • 최경선 
  • 입력 : 2018.06.27 17:33:02   수정 :2018.06.27 1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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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게 거래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 담긴 말이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나의 능력은 천부적"이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이런 말에 한껏 기대를 품었던 사람이라면 이달 12일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합의문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집요하게 요구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는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핵무기를 폐기할 것인지도 언급되지 않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덜컥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거래가 성공적인지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북한에 대해선 처음부터 의심을 품었다. 20여 년간 처절한 고통 속에 만들어낸 핵무기다. 쉽게 포기한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얼마 전 만난 중국 외교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10%도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 주민들도 대다수는 "어딘가에 몇 개를 숨겨두겠지"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가 있다. 북한과 70년 가까이 적대관계로 대립해온 미국의 의심은 더 크고 깊을 것인데도 싱가포르 합의문에는 핵폐기 방법·시한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 후속 협상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가능한 한 빨리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술에 또 미국이 놀아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칼자루는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 경제제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여전히 특별한 위협"이라고 지목하며 22일 대북 제재를 1년 더 연장했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거나 숨기려 하거나 나중에 다시 만들려고 궁리해 둔다면 결코 경제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가 분명하다. 핵무기를 5년 뒤에 폐기하면 경제제재도 5년 뒤에나 해제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미국 정부·의회 여기저기서 표출된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대북 경제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김 위원장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이라는 적을 앞세워 주민들의 대동단결을 유도해 왔다.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는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 주민들의 굶주림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미국과 맞서기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로 날아가더니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웃고 밥을 먹었다. 북한 관광지역에서는 반미 포스터나 기념품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이 돌아올 때마다 매년 `반미투쟁의 날`이라며 떠들썩하게 개최하던 반미 군중집회도 올해는 목격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김 위원장 스스로 지우고 나섰는데 외부의 적이 물러나면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현상이 있다.

내부의 적들이 사나워지는 일이다. "잘 먹고 잘살게 해준다더니 언제까지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온다고 치자. 과거 미국을 향하던 그 불만의 화살은 이제 고스란히 김 위원장을 겨냥할 것이다. 미국을 다시 적으로 돌리기엔 김 위원장의 행보가 너무 요란했다. "속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하는 순간 그와 파안대소하던 세습 독재자의 권위도 덩달아 추락할 것이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지구촌 이목을 집중시켜 놓고 `비핵화 쇼`를 펼쳤다. 그가 약속을 뒤집는 순간 미국의 `군사옵션` 명분은 치솟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을 믿지 말라"고 했던 김일성의 말을 새겼다면 중국이라는 배경을 믿고 요령을 피우는 잘못된 도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김 위원장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해제시켜야 하는 외길 앞에 서 있다.
핵무기 포기라는 외길이다.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켜 내부의 적이 사나워지는 것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북한판 기득권 청산`은 김 위원장의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미국을 적대시하고 핵무기를 보유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득권 세력부터 권력 주변에서 떨쳐내야 북한의 개혁·개방도 비로소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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