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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터무니찾기] 장작이 돼 몸을 사를 자

  • 이상훈 
  • 입력 : 2018.06.22 17:06:57   수정 :2018.06.25 09: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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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은한 흰빛을 내는 백자는 흙과 불의 예술이다. 그 흙과 불은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 우선 희고 고운 흙, 백토다. 예로부터 중국 장시성의 고령(가오링)촌에서 나는 백토, 즉 고령토가 유명하다.
수입해서 쓴다. 국내에서는 경남 하동이나 전남 강진, 경북 상주 등에서 나온다. 과거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요즘엔 다른 곳에 많이 쓰이고 있어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렇게 구한 백토는 고운 흙 입자와 잡물질을 골라내는 수비(水飛)를 거치고 점성을 높여주는 진흙이 약간 섞이면 백자가 되기 위한 흙이 된다. 그러곤 장인의 손길이 빚는다.

백자를 빚고 가마를 만든 뒤엔 불이 백자의 흰빛을 결정한다. 이때 중요한 게 장작이다. 1200~1300도의 고온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장작의 대명사 격인 참나무는 화력이 좋기는 하지만 재가 많이 생기는 탓에 빛깔을 망칠 수 있다. 백자에는 그래서 소나무를 쓴다. 소나무도 수입 소나무보다는 추위를 견뎌내고 자라 단단하고 송진을 머금은 우리나라 소나무가 제일이다. 소나무는 고온 속에서 재가 모두 증발해서 백자의 고운 흰빛을 해치지 않는다.

# 정치권에서 흔한 말 중 하나가 `정치는 예술`이란 거다. 공식이나 과학처럼 자로 잰 듯이 1 더하기 1은 2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동시에 극한의 정성과 조화가 있어야 일이 이뤄진다는 뜻도 깔려 있다. 바로 장인이 흙과 불을 다스려 백자란 예술을 빚는 것처럼.

대한민국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보는 이의 한숨을 무한으로 뽑아내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선거 결과를 맞닥뜨렸지만 선장 잃고 우와좌왕하는 배의 수준을 넘어 노조차 내팽개치고선 서로 멱살잡이다. 그저 물결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닌다.

당 대표가 떠나자 한참 뒤늦은 비판과 쓴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더니 이젠 "무슨 자격으로 떠드느냐"며 서로에게 삿대질이다. `목을 친다`는 난데없는 살생부까지 돈다. 쇄신을 말하지만 칼자루를 서로 쥐겠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란 극한 상황에서 저 심해로 사라진 듯했던 계파 갈등이 스멀스멀 다시 새어나오고 있다.

# 도대체 이 당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장황하게 꺼낸 백자 이야기로 다시 가보면 실마리의 상징이 좀 잡힌다. 백토는 백자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백토가 부실하고 오염돼 있으면 그 이후의 공정이 아무리 정교해도 백자의 품질은 시원찮을 수밖에 없다.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백자가 정당이라면 이 정당을 구성하고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백토인 셈이다.

그런데 백토가 부실하고 오염돼 있으면 정당이 잘될 리가 없다. 그동안 한국당으로 유입된 사람이 과연 누구였는지, 그들이 과연 백토였는지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고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평가했다. 한국당은 새로운 흙이 필요하다. 그것도 곱고 깨끗하고 정제된 백토 말이다. 그래야만 정당의 기본을 갖출 수 있다.

또 다른 관건은 장작이다. 장작이 좋아야 자신을 태워서 이뤄내는, 소성(燒成)이 제대로 된다. 송진기를 머금은 충분한 양의 소나무 장작이 가마에 들어가야 재조차 사라지는 고온을 뽑아낼 수 있고, 백자의 은은한 빛을 만들어낸다.

한국당에는 충분한 경험과 연륜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많다. 이제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 백토를 소성할 장작이 기꺼이 되기만 하면 된다.
타들어갈 때 재를 뿌리는 게 아니라 증발시키는 충실한 장작이 되면 된다. 그래야 정당이 생명의 활기를 갖는다.

지금 한국당에 몸담은 사람들은 밖에서 백토를 구해올 생각이 있는가. 한국당에 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소나무 장작이 될 각오가 있는가. 이것부터 답한 뒤에 쇄신을 말해야 한다. 그게 순서다.

[이상훈 정치부 국회반장 겸 레이더P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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