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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이분법의 극복

  • 입력 : 2018.06.13 17:54:18   수정 :2018.06.13 18: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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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경계를 구분 짓는 습성이 있다. 위헌과 합헌으로 나누고, 계약의 성립과 불성립으로 가른다. 정도의 문제로 다룰 수 없고, 중간 영역을 택할 수도 없다. 이른바 법의 이분법적 속성이다.
팍팍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법의 한계와 부조리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실의 죽음은 과정이다. 그러나 법에서는 삶과 죽음도 특정 시점으로 딱 나뉜다. 뇌사(腦死)가 그 경계다. 뇌사 이전에는 `사람`, 그 이후에는`물건(사체)`이다. 법은 왜 이렇게 이분법적 경계를 짓는 데 집착할까? 법학자인 레오 카츠는 죽음이 법적으로 이분법적일 수밖에 없음을 논증했다. 그에 따르면 죽음을 과정으로 정의하면 생명력 약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80% 사람, 50 % 사람, 30% 사람 등으로 달리 대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죽음은 노화나 질병에서 뚝 떨어지는 절벽이어야 한다고 했다.

유죄와 무죄의 판단은 이분법적 속성이 가장 극명하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 입증이 없으면 범인임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어도 무죄를 선고한다. 그 경계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잣대다. 유죄 가능성에 따라 법정형의 30%, 50%, 80% 책임을 물어 그에 맞는 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 어느 범인이 심야에 여성들이 사는 반지하 셋방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다가 한 여성에게 발각돼 실랑이 도중에 상처를 입히고 도망갔다. 그 와중에 지갑을 떨어뜨렸다. 피고인은 바로 그 지갑 속 주민등록증의 인물이었다. 그는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그날 범행 장소 인근에서 술을 마시던 중 지갑을 분실했을 뿐이라고 했다. 고심 끝에 재판부는 강도상해죄로 징역 5년을 선고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상고했으나 곧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1년가량 후에 그 피고인은 유사한 환경에서 저지른 강도강간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음이 밝혀졌다. 당시 피고인 케이스는 판사들 사이에 회자됐고, 이분법적 가름의 본질에 대해 곱씹게 했다.

법(法)이라는 글자는 물 수(水)와 갈 거(去)로 구성된다. 강(江)이든 하(河)든 물이 가면 이쪽 편과 저쪽 편이 구분되게 마련이다.
강의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것이 법관의 업이라 할 수 있다. 가름은 원칙에 따라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진행, 언동, 관계 등 그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강처럼 유유해야 한다. 그것만이 팍팍한 이분법적 법의 속성을 극복하는 길이다.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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