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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필동정담] 독재자의 한밤 외출

  • 노원명 
  • 입력 : 2018.06.12 17:34:50   수정 :2018.06.12 17: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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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독재자는 탐욕스러운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 데도 여행할 수 없고, 다른 자유로운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구경할 수도 없이, 여자처럼 집안에 들어앉은 채로 혹시 외국으로 여행을 해서 뭔가 좋은 것을 보고 온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살아간다."

2400년 전 사람 플라톤이 마치 현대 북한 독재자의 삶을 옆에서 관찰하고 쓴 듯하다. 12일 미·북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은은 두 가지 오랜 관습을 깼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국과 러시아 외에 다른 해외 국가를 방문한 것은 김일성이 동유럽을 순방했던 1984년 이후 34년 만이다. 항공기를 타고 여행한 것도 1986년 김일성 소련 방문 이후 처음이다. 왜 독재자들은 여행을 꺼리는가. 플라톤에 따르면 신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갖가지 공포와 정욕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은 감옥 속에 묶인 것과 같다. … 그는 한평생을 공포에 싸이고 경련과 괴로움에 차서 지내게 된다." 김정은은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밤 싱가포르 시내 투어에 나섰다. 관광명소 마리나베이로 가 식물원을 둘러보고 전망대, 공연장 `에스플러네이드`를 찾았다. 시민들이 환호하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 표정이 몹시 신나 보인다. 1984년생인 김정은은 이제 30대 중반이다. 이국적 풍광에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낄 나이다. 그 나이의 평균적 한국 남성이라면 출장 또는 가족여행으로 1년에 한두 번쯤 해외에 나간다. 김정은은 2011년 최고 권좌에 오른 이후 싱가포르 방문 전까지 중국을 두 차례 간 것이 전부다. 일곱 살 때 위조여권으로 도쿄 디즈니랜드를 다녀왔고 10대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했지만 이곳저곳 자유롭게 돌아보는 경험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김정은에 대한 프로파일링 리포트에서 `구미(歐美) 문화`에 강한 동경을 품은 인물로 묘사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외부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야말로 김정은을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일 수 있겠다. 왕국에 갇힌 독재자로 평생을 지내기에 그는 아직 너무 젊다. 어쩌면 그 갑갑증이 김정은을 어제 미·북회담장까지 이끈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리나베이 한밤 외출을 보며 든 생각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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