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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필동정담] 不得貪勝

  • 이동주 
  • 입력 : 2018.06.11 17:13:35   수정 :2018.06.11 17: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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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십계명으로 천여 년간 전해져온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 번째 계명은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승리를 탐하는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아무리 옛 현인 말씀이라지만 바둑 잘 두는 요령이라면서 다짜고짜 이기려는 마음부터 버리라는 건 좀 비현실적 요구 같다. 하지만 부득탐승은 이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무리수를 두거나 잔꾀를 부리다 제 풀에 무너지니 평정심을 잃지 말라는 얘기다. 흥미롭게도 위기십결에는 부득탐승 말고도 버리라는 주문이 많다.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해 넓은 곳으로 가라는 기자쟁선(棄子爭先), 작은 것을 버리고 큰 자리를 취해야 한다는 사소취대(捨小就大), 위기를 만나면 가볍게 버리라는 봉위수기(逢危須棄) 등.

바둑은 제한된 공간에서 상대방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는 게임이다. 그 목표를 위해 돌의 효율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는 수읽기를 한다. 수읽기는 내 멋대로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상대가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변화도를 가상해 대책을 세우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 능력이다. 한데 그 과정에서 내 것을 선뜻 내줄 궁리를 잘해야 진정한 고수가 된다니 역설적이다.

어쩌면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 최고수들을 모조리 꺾은 비결도 바로 거기에 있을 듯싶다. 어차피 10의 170승이라는 경우의수를 읽어내는 일은 슈퍼컴퓨터를 총동원해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불확실한 미래보다 눈앞의 작은 이득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기계라서 더 잘 극복해낸 게 아닐지.

지방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광역·기초단체장, 교육감, 지방의회 의원에 국회의원 재보선 후보까지 겹쳐 누가 누군지 이름도 알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혼탁하다.
탐승(貪勝)에 눈먼 이들의 음모, 허세, 위선, 꼼수가 넘치고 인터넷 댓글엔 최소한의 품위조차 실종된 지 오래다. 과거 정치를 돌아보면 대의를 위해 흔쾌히 버릴 줄 아는 고수들이 더러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하나같이 하수들만 날뛰는 느낌이다.

그나마 덜 못난 후보라도 골라서 뽑아야 하는 게 유권자의 의무다. 우울하지만 어차피 민주주의는 `차악(次惡)의 선택`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차라리 인공지능에 선거를 맡기는 날이 왔으면 하는 허황한 생각이 자주 든다.

[이동주 비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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