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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모두가 기대하는 만남에 꼭 있어야 할 것

  • 입력 : 2018.06.08 15:59:26   수정 :2018.06.08 17: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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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는 단오(端午)가 들어 있다. 단옷날이면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사내들은 힘자랑을 하느라 씨름판에 나서는 풍습이 있었다. 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여름 더위를 대비하는 `부채 선물`도 빠뜨릴 수 없는 풍습이었다. 이 풍습 덕분에 부채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 시장에서 흔하고 많이 팔리는 물건이 되었다.
이달에는 부채에 얽힌,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소개한다. 조선 영조 시대에 활동한 심사정이 그린 이 그림의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서예사에서 성인으로 불리는 왕희지(王羲之)로, 다리 위 의자에 앉은 사람이다. 그는 미소를 띤 채, 부채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데 그 맞은편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듯한 할머니가 왕희지의 상대방 주인공이다. 세 아이는 모두 왕희지를 모시는 동자들이다. 다리 난간과 몸체의 형상까지 제법 자세하게 그렸고, 다섯 인물의 표정까지 살필 만한 작품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왕희지가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하게 지내던 어느 날, 길에서 저 노파를 만났다. 그는 부채장수로, 마침 부채 여남은 개를 바구니에 담아 나선 참이었다. 왕희지가 값을 묻자 부채장수 할멈은 하나에 20전 정도라고 했다. 그러자 왕희지가 그 부채 하나에, 부탁하지도 않은 글자를 다섯 자나 써 버렸다. 할멈이 황당해하며 남의 생계를 이렇게 망쳐놓아도 되느냐고 항의하자 `할멈,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예요. 장터에 가서 왕희지의 글씨라고만 하면 100전도 더 받을 겁니다`라며 달랬다. 투덜대며 장에 이른 노파는 대번에 그 부채를 비싼 값에 팔았고, 한 번 재미를 보자 왕희지를 찾아와 더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왕희지는 웃기만 하고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유명해져 심사정보다 훨씬 전, 중국과 일본에서도 화가들이 소재로 삼아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과 대조할 만한 중국과 일본의 그림들은 산길만 그렸지만 이 그림에는 유독 `다리`를 그렸다. 심사정이 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전하는 다리를 굳이 그린 데에는 이유가 있겠으나 짐작만 할 뿐이라 길게 이야기할 바는 아니다. 그림이 담고자 한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왕희지의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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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서 만난 노파의 부채에 스스럼없이 글씨를 쓴 `짓`이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왕희지는 젊은 시절부터 느긋하고 관대하며 유머가 있었고 풍모가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의 모든 장점을 모은 듯한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그림에서도 처음 보는 노파의 부채에 `용감하게` 글씨를 남기는 행위가 `오만함`이나 `건방짐`이 아니라 자신감에서 나오는 `관대함`이요, 다정하게 놀란 노인을 달래는 말은 `짓궂음`보다 `유머러스함`이고, 글씨를 더 써 달라는 그에게 웃음으로 거절의 뜻을 드러냄은 `우아한 자존감`인데 그림 속 왕희지의 얼굴이 그의 예사롭지 않은 품성의 느낌을 묘하게 담고 있다.

왕희지가 글씨의 성인으로 추앙된 데에는 그의 글씨 솜씨만 작용하지 않았다.
그를 글씨의 성인, 서성(書聖)으로 칭한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스스로 지은 왕희지 전기에서 `진선진미(盡善盡美)`로 그의 사람됨과 글씨를 함께 설명하려 했다. 당 태종의 존경과 애정을 담은 저 단어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 추구하는 바, 고양된 정신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서예가가 좇으려던 경지를 상징하는 왕희지는 경쾌한 자유로움에 인간 존엄을 담아낼 줄 알았다.

좋은 날, 모두가 기대하는 만남에 꼭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으로도 범할 수 없는, 서로의 고양된 정신에 교감하고 공명함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교감과 공명이 있는 만남은 하나의 훌륭한 예술로 일컬어도 손색이 없다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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