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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소셜미디어 정치의 문제

  • 입력 : 2018.06.08 15:57:15   수정 :2018.06.08 16: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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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나 메신저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때때로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는데 청탁서를 전했다고 해서 나중에 확인하니 카카오톡으로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나 문자와 달리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는 무조건 이용할 필요도, 그때그때 확인할 까닭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사용은 하지만, 문자를 제외한 것들은 알림 기능을 꺼둔 채 몰아서 확인하는 편이다.
이 채널 저 채널에 수시로 호출돼 정신이 산만해지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정치가 범람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공식 채널보다 트위터를 더 사랑하는 듯하다. 대변인 브리핑이 있기도 전에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공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과 직접 소통한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 등을 이용해 담화를 내는 일이 잦다. 이들은 전 국민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특정 회사 계정을 모두 가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라면 특정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민을 무시해도 좋다고 여기는 걸까. 특정 사기업 채널의 광고모델이나 홍보대사도 아닌데 말이다.

당연하지 않은 게 당연해지면 격차라는 유령이 생겨난다. 공당의 지도자들이 사기업의 통신 플랫폼과 일체가 돼 움직이는 것은 특정 메신저나 소셜미디어의 비사용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로, 그 행위의 공적 성격을 파괴한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는 대중의 관심을 붙잡아두고 언론의 주목을 끄는 일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사적 언어와 공적 언어의 구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막말과 정견을 뒤섞어버린다.

정치의 발화는 언어의 꽃에 해당한다. `인간의 조건`(한길사)에서 한나 아렌트는 공공영역에서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목숨(zoe)이 아니라 생명(bios)을 얻는다고 했다. 고대 희랍의 사고를 이어받은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은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이 있을 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품고 민회에 기꺼이 나가서 연설할 자유를 행사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희랍인들은 자아를 단련하는 일상적 기술의 하나로 수사학을 익혔다. 타인의 존중을 받을 만한 인덕을 쌓고, 공감을 일으키는 언어를 사용하며 논파되지 않을 단단한 논리를 세우는 기술을 배웠다.
당연히 우아하고 세련된 언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치를 바로잡는 것은 말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한다. 사적 채널을 통한 거칠기 짝이 없는 발화가 아니라 공적 채널을 통한 정제된 언어를 정치 언어로 가질 권리가 우리한테는 있다. 혐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막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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