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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진단] 예술의 자율성은 엄격함에서 나온다

  • 입력 : 2018.06.06 17:11:06   수정 :2018.06.07 09: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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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돌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과의 인연을 되짚어보니 감회에 젖는다. 그곳에는 젊음과 꿈, 뜨거운 열정과 애틋한 연정이 있다. 경복고 재학 시절 광화문 네거리에 무뚝뚝하고 투박하지만 우직하게 서 있던 당시 시민회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을 늘 지나다녔다. 하루는 `저 시민회관 사장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았던 것도 같다.
1999년 예술의전당 사장 임기를 마치고 당시 민영화 체제로 바뀐 세종문화회관의 첫 재단법인 사장으로 부임했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좋은 길목인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은 공연장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중요한 경축행사가 자주 열리는 행사장으로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부임한 뒤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이미지 쇄신`이었다. 무엇보다 공연 작품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중적 작품 30%, 순수예술작품 70%를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대극장에서는 정명훈 지휘의 팝콘서트, 백건우와 파리앙상블, 스위스 모리스베자르발레단 초청, 강수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초청 공연 등 안팎으로 화제가 되는 공연을 유치했다.

외부 초청 공연이 아무리 훌륭해도 산하 단체 공연 수준이 떨어지면 극장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 세종 산하 9개 예술단체의 정기공연도 질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해 예술단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해 실력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내보내겠다고 했고, 그 결과 서울시향 연주자 4명을 포함해 9명이 탈락했다. 이에 노조는 즉각 세종문화회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타협안을 찾기 위해 수차례 협상을 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소송 끝에 탈락자를 복귀시키되 1~2년 동안 오디션을 봐서 합격하지 못하면 해고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후 서울시향에는 정명훈이 예술감독으로 취임했고 결국 그 당시 탈락자들은 영원히 해고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이 너무나 지난하고 외로웠다. 그러나 어떤 분야의 발전과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살을 깎는 노력과 고통이 동반한다는 것을 되새기고 악역을 자처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코 나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를 떠올리면 안타깝고도 아찔한 마음이지만 이것이 단원들에게 무사안일주의, 나태함을 경계하고 갈고닦을수록 빛나는 예술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광화문 거리를 거닐면 그때의 기억으로 아직도 가슴이 뛴다. 당시 내가 세종문화회관에 명실상부 대한민국 문화예술 1번지로서 예술의 향기를 담을 수 있었던 것은 타협 없는 단호함 덕분이었다. 오로지 수준 높은, 혹은 대중이 보고 싶어할 만한 공연을 엄선해 초청했다. 오디션 당시에는 오로지 훌륭한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실력과 자세를 갖추었는지만을 엄격하게 심사했다.

지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화두다. 세종문화회관이 시민의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하고자 재단법인화되었던 그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한국 공연의 1번지라는 정체성을 추구해나가야 한다. 이 또한 굳은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시민회관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의 화려한 변모는 서울시 산하 기관에서 1999년 순수예술계의 터전으로 독립해 재단법인으로 출범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문화예술의 자율성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자율성은 `예술` 외에는 다른 불순물은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에서 나온다. 극장은 늘 오디션을 보는 단원의 절실함과 평가를 내려야 하는 심사위원의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지녀야 한다.
그래서 권력이, 정(情)이, 정치가 발붙일 틈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블랙리스트`라는 부끄러운 비극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 본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허무하지도, 생각에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고독하지도 않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말처럼 예술의 향기가 널리 퍼지는 광화문 광장을 여전히 꿈꾼다.

[이종덕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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