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사법부 造反

  • 노원명 
  • 입력 : 2018.06.06 17:10:11   수정 :2018.06.06 19:45:13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358713 기사의 0번째 이미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전국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읽고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좀 길지만 그중 핵심 문장을 통째 옮긴다. "오늘 우리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법관으로서의 자존심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수치심에 무너지지 말고, 우리의 양심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오랜 기간 굳어진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각 법원의 판사회의와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을 통하여 지혜와 의지를 모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조직의 장이 구성원들에게 보내는 글을 여럿 보았으나 이렇게 `혁명 기운` 충만한 글을 본 적은 없다. 표현이 아니라 함축된 내용이 그렇다. 위기에 직면한 조직 수장은 보통 협조와 이해를 당부하는데 김 대법원장은 아래에서부터 떨치고 일어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혜와 의지를 모아 달라는 그의 청이 전달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의정부지법 단독판사들이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후 서울중앙지법과 가정법원, 인천지법, 부산지법 등의 단독·배석 판사들이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보다 선임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은 회의만 하고 의견은 내지 않았다. 그러자 고위직 법관들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5일 "수사 촉구는 법관과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대 성명을 냈다. 판사 사회가 연차와 계급에 따라 쩍쩍 갈라지고 있다.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 98건에는 문제 법관 감독 방안,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청와대 설득 등 사법행정권을 부적절하게 행사한 정황이 드러난다. 압권은 대통령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대법원의 노력으로 KTX 해고 승무원 재판 등을 열거한 대통령 면담 자료다. 대법원이 대통령 국정 운영을 뒷받침한다? 농담으로도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그 문건을 써올린 사람은 법관으로서 자존감이 결여됐거나 삼권분립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 말을 진짜 대통령 앞에서 했을까.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는 건 일차적으로 교양의 문제다. 그 똑똑한 조직에 이런 수준의 몰교양이 깃든다는 건 한탄스럽다. 양승태 대법원이 유독 그랬는지, 앞으로 고고한 사법부 뒤꼍 풍경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국외자가 알기 어렵다. 어쨌든 환멸이 인다. 그런데 이걸 `재판 거래`로 비약시키는 건 다른 문제다. 문건은 이미 난 대법원 판결 중 보수적 청와대 입맛에 맞을 만한 판결을 추리고 있다. 그중에는 이명박 정권 때 난 판결도 있다. `이런 좋은 판결도 했으니 상고법원 신경 좀 써 달라`는 말은 듣기 민망하지만 거래는 아니다. 재판 거래가 성립하려면 `앞으로 재판에 청와대 의중을 반영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이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이지만 소부(小部) 사건은 관여하지 않는다. 대법관 14명 성향은 다양하다.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된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이나 행정처 주문에 맞춰 판결한다? 상상이 지나치다.

놀라운 것은 일반인이 아닌 현직 판사들이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증거와 사실 판단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대법원 판결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지 않을 그들이 몰라서 이런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양승태 대법원을 겨냥하는 한편으로 사법부 질서, 인사 관행, 엘리트 체제에 대한 총체적 저항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이 저항이 가져올 결과는 사법 혁신일까, 사법 아노미일까.

젊은 판사들을 홍위병에 비유하는 건 결례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 사법파동에서 문화대혁명의 그림자가 떠오르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문혁은 마오쩌둥이 `조반(造反)`을 주문하면서 시작됐다. 조반은 질서에 대한 저항이다. 마오는 "모든 저항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造反有理)"며 류사오치·덩샤오핑 등 실권파들을 상대로 한 홍위병의 공격을 부추겼다.
지나고 보니 그 이유라는 것이 허깨비 같은 것이었다. 문혁은 거대한 희극이자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모든 저항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마오의 말은 틀렸다. `이유가 합당할 때 저항은 의미가 있다`가 진실에 가깝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