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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터무니찾기] 단일화와 성조기

  • 이상훈 
  • 입력 : 2018.05.18 15:53:23   수정 :2018.05.24 16: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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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나 구여권 정치인들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보수가 위기다."

이 말이 나오면 꼭 몇 사람은 반론한다. "아니다.
보수는 여전하다. 다만 보수정당이 위기다." 어떤 주장이든 위기의 이유로 꼽는 건 거기서 거기다.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이라는 점, 지방선거의 보수 후보들이 맥을 못 춘다는 점, 보수적 주장이나 보수적 인물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점 등. 보수가 위기네, 보수정당이 위기네 다툼이지만 이들이 내세운 이유 자체에서 둘 다 위기라는 점이 드러난다. 보수도 보수정당도 말이다.

# 전통과 그 전통에 기초한 현 체제에 자부심을 갖고 가치를 두는 성향이 보수다. 정치학 책과 용어사전을 종합한 정의다. 그리고 이런 성향을 내세워 선거에도 나서고 정책도 발표하는 정당이 보수정당이다. 쉽게 말해 곧 죽어도 뭔가를 지키는 건데, 이는 독자성과 자기책임, 격식을 중시하는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국가의 시혜보다는 개인의 책임을, 거리 투쟁보다는 정식 절차를 통한 해결을 선호한다. 완전히 뒤엎기보다는 조금씩 수정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래서 때로는 고리타분하고 완고하고 엄해 보인다.

# 과거 보수정당이 진보정당을 비판한 단골 레퍼토리는 후보 단일화였다. 2012년 대선 때 TV 토론까지 하며 진행됐던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를 비난했고, 2016년 총선 때는 야권 연대 혹은 후보 단일화를 꼬집었다.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오로지 당선만을 위한 야합이다`는 주장과 함께.

서울시장에 도전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가 17일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를 향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정치적 소신과 신념이 확실하다면 동지로 생각하고 같이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김 후보 자체는 완주 의사를 강조했고, 김 후보 측은 안 후보와 단일화하는 게 "북쪽에 있는 사람이랑 단일화하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국당에서도 단일화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런데 이제는 단일화에 갑자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완주한다고 했던 안 후보 역시 김 후보의 발언이 알려진 뒤 "무슨 이야기를 왜 했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관심을 보였다. 눈앞 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내뱉은 원칙과는 다른 길을 가려는 건데, 곧 죽어도 지킬 건 지키고 독자성과 자기책임을 중시하는 모습은 도통 아니며, 격식 있는 모습과도 멀다. 보수정당의 위기다.

# 주말이면 서울 중심부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들의 집회가 열린다. 바로 태극기 집회다. 애국의 상징이고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열성적으로 흔들며 국가를 걱정하고 나름대로 주장을 내놓는 자리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집회고, 누구든지 참여해 주장할 수 있는 자리다. 대선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주장은 그런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주장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집회 모습 중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등장하고 간혹 이스라엘 국기까지 보인다. 이 집회의 참여자 상당수는 자칭 보수다. 그리고 보수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왜 성조기와 트럼프 대통령 사진, 이스라엘기가 등장하는 걸까. 보수의 전통이 외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보수의 가치가 남의 나라 국기인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에 기반을 둔 건 아닐진대 말이다. 또 보수의 자부심이 남의 나라 대통령인 트럼프에 근거를 둘 리는 없을 것 아닌가.

이런 모습은 독자성과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태극기와 성조기·이스라엘기가 같은 값으로 대접받는 장면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보수의 위기다.

[이상훈 정치부 차장 겸 레이더P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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